▲ 김태수

환동해학회장

국학박사

삼척시의 사직동과 근덕면을 경계 짓는 한재(大峙) 정상에 올라서면 명사십리라는 애칭의 아름다운 해변이 보인다. 쪽빛 바다에 새털구름 같은 파도가 손에 손을 맞잡고 해변으로 달려오고, 울창한 해송들은 파도를 기다리듯 까마득히 줄지어 늘어선 풍경에 가슴이 시원해지고 감탄사가 저절로 나온다. 매년 새해 첫날 해맞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지만 평소에도 삼척을 찾아오는 많은 관광객들이 한 폭의 그림 같은 맹방해변에 취해 무한한 행복감을 느끼는 곳이다.

맹방은 향을 묻었던 마을이라는 뜻의 매향방(埋香坊)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허목의 「척주지」에 의하면 고려 충선왕 원년(1309) 강릉도존무사를 비롯하여 동해안의 수령들이 모두 모여 미륵불의 하생을 가원하며 고성부터 평해까지 향 2,500주를 각 포구에 묻었다. 삼척에서는 맹방정(孟芳汀)에 250주를 묻었다. 그런 까닭으로 맹방 주변 해안을 매향안(埋香岸) 또는 매향맹방정(埋香孟芳汀)이라고 했다. 향은 차(茶)·꽃· 과일·쌀과 함께 부처님께 올리는 다섯 가지 공양물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미륵불은 미래의 부처로서 정의와 행복을 선물하는 구세주와 같은 존재이다. 열악한 삶의 환경에서 고통 받는 백성들에게 미륵불은 간절한 희망이고, 힘든 삶을 견디게 하는 든든한 안식처였다. 맹방은 이렇듯 인간세상을 구원해줄 미륵불을 기다리는 신성한 기도처이며 건강한 희망의 터전이었다.

고려시대 우리 선조들의 절절한 소망 탓일까? 21세기 맹방은 미륵불이 하생한 극락의 꿈을 꾸고 있다. 깨끗한 백사장과 울창한 송림의 맹방해변 주변에 골프장과 리조트, 요트면허시험장 등의 관광레저시설이 들어서면서 년중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4월이면 벚꽃과 유채꽃의 향연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면 맹방을 비롯한 동해안은 세계적인 휴양레저관광지로 각광받을 것이며, 가장 훌륭한 개발정책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그대로 잘 보존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우리는 주어진 자연을 잘 보존하기만 해도 경제적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상황이다. 동해안 최고의 체험관광지로 급부상한 장호해변의 경우, 눈 시리게 맑은 바닷물과 아기자기한 바위들을 잘 보존하면서 투명카누·스노우쿨링 등 자연친화적인 즐길거리를 만든 것이 성공비결이다. 그로 인해 인근의 용화와 갈남마을까지 관광객이 차고 넘친다. 이것이야말로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하는 경영전략 아닌가. 최근 동해안에서 항포구 개발로 아름다운 해변이 순식간에 사라진 사례들을 보며 이 시대의 민주시민으로서 그것을 막지 못한 것이 늘 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다시는 그러한 자연파괴행위가 있어서는 안 된다. 맹방해변을 비롯한 동해안은 삶에 지친 수많은 민중들이 미륵불의 하생을 기원하던 희망의 터전임을 잊지 말자.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소중한 자원임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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