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욱현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

15초 예술이라 불리는 광고, 광고를 보는 입장에선 스치듯 보아도 그걸 만드는 입장에선 아마 상상도 못할 지난한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광고를 만드는 사람들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출연한 광고기획자의 말은 ‘내가 감동해야 남을 감동시킬수 있다’였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선 내가 먼저 감동해야 한다는 당연한 논리였다. 이런 광고를 보았다. 젊은 아빠들을 방에 혼자 두고 실험을 하듯 어린 자녀들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다. 예를 들면 아이를 마지막으로 안아준 적이 언제였습니까… 하는. 그리고 아이 영상을 보여주며 젊은 아빠들의 미안감을 자극한다. 자신의 어린 자녀를 그리워하게 한다. 하지만 영상은 이어 예고 없는 질문을 던진다. 그럼 당신의 아버지를 안아드렸던 적은 언제였습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아버지들의 인터뷰 영상. 아버지들은 한결같이 자식들한테 미안하다는 얘기를 한다. 젊은 아빠는 금새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아버지가 손자(혹은 손녀) - 실험자의 자녀를 안은 채 나타난다.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젊은 아빠들, 그 아들을 안아주는 아버지. 이런 모습을 보고 감동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이런 광고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인용한 실제 광고의 예는 모 은행의 인터넷 광고이다. 광고는 매우 감동적이었고 보는 이의 눈물샘을 자극했고 그 은행을 인간미 어린 금융으로 확신하게 - 하려는 의도가 가득했다. 그 의도를 알면서도 광고는 감동적이었다.

광고보다 더 감동을 먹고 사는 장르가 있다면 아마 극 아닐까. 공연, TV드라마, 영화 - 통칭하여 극이라 하는 - 극이 갖는 목표 중에 큰 것은 아마 감동일 것이다. 극예술행위자와 소비자는 감동을 통해 서로의 목적을 달성한다. 감동이 없는 극은 지루하며 여운을 남기지 못 한다. 극에서 감동을 빼면 갈등만 남는다. 극을 쓰는 사람으로서,극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고민해본다. 난 그럼 언제 감동했었지? 난 무엇에 감동하는 걸까? 여러분은 마지막으로 언제 감동했었습니까? 여러분은 지금 무엇에 감동하고 있습니까? 감동이 없는 인생은 허무하다. 그저 일상에 파묻혀 막 사는 것이며 동심을 잃어버린 생이다. 동심을 잃어버린 인생은 그저 흐르는 시간에 몸을 맡긴 채 인생의 끝을 향해 걷는 투지 없는 순응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심은 생명에의 끊임없는 동경이다. 끊임없이 생생하게 살아있자는 생의 의지이다. 단 한 번 부여받은 우리의 생이 결코 ‘자식들 먹여살리고 결혼시켜 분가시키면 끝나는’ 숙제일 수 없다. 우린 왜 이 땅에 왔는가. 우린 끊임없이 그 질문을 생각하며 답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그 물음이 잠시 힌트를 얻는 때가 바로 ‘감동’아닐까. 우린 감동 받을 때 비로소 우리가 일상에서 잃어버린 것과 그리고 되찾아야 할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감동 없는 인생은 키를 잃어버린 배처럼 어딘지 정처 없다. 우리네 삶에 감동의 자리를 남겨놓고 비어 있을 때 허전해 하자. 한 발 더 나아가 더 멋진 사람은 남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사는 사람 아닐까. 남을 감동시키며 사는 사람, 얼마나 멋진 생인가. 자, 그럼 이제 질문을 강원도로 돌려보자.

강원도는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는가. 강원도는 숙제도 많고 그만큼 꿈도 많다, 감동이 고프다. 강원도에 감동을 가져올 일꾼들이 이곳 저곳 많이 필요하다. 이번 주면 국회의원 선거가 있다. 국회의원은 당연히 강원도의 큰 일꾼이다. 당연지사 공약으로 끝나지 않는 실천을 기다린다. 선거기간 때 90도 인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재임 기간 내내 민의를 들어주었음 한다. 그리고 강원도의 소리를 대변해 달라. 4월 13일은 너무 중요한 날이다. 도민 모두의 책임 있는 한 표 행사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 강원도의 감동을 기다려보자. 4월 13일,우리가 행사하는 한 표의 의미이다.

▶약력= △(사)서울연극협회 부회장 역임 △(사)한국희곡작가협회 상임이사 역임, 극단 필통 대표 역임 △저서) 선욱현 희곡집 1,2,3,4권 , 시집 <만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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