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희수

춘천지법

국선전담 변호사

“부려만 먹구 왜 성례 안 하지유?”

김유정의 <봄봄>에서 데릴사위의 불만이다. <봄봄>에서 영감은 딸 점순이와의 혼례를 미끼로 데릴사위의 노동력을 착취한다. 사위는 ‘갑’질을 일삼는 장인에게서 희망고문을 당하며 ‘을’의 고통을 감수한다.

그동안 우리는 권력자들 앞에서 <봄봄>의 데릴사위 같은 존재였다. 4년마다 등장하는 그들은 우리를 속여 왔다. 공약이라는 신기루를 남발했고 현실이 나아질 것이라 약속했다. 도로에서 펄럭이던 선거 현수막에는 점순이와의 혼례보다 더 매력적인 약속들이 적혀있었다. 예전 선거에서도 그랬다. 그때도 국민을 위하겠다는 분이 넘쳐 났는데 우리는 별로 행복해지지 않았다.

을의 지위에만 익숙했던 국민들은 4·13 총선에서 유쾌한 갑질을 체험했다. 한 표가 절실한 정치인들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선거 결과는 ‘인공지능 알파고 유권자’라는 말이 생길 만큼 절묘했다. 의석수의 황금분할로 어느 당도 자신이 승리했다고 평가하지 못하였고, 대화와 타협 없이 특정 정당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추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오만했던 정치인들의 모습은 일시적이나마 사라졌고 자기반성 퍼포먼스도 시작되었다.

강원도에서도 국회의원 8명이 새로 탄생했다. 새 바람을 몰고 올 초선이 3명, 민심의 무서움을 다시 느꼈을 재선이 3명, 정치력 발휘가 기대되는 삼선이 2명으로 신구가 적절히 조화됐다. 여당이 강원 지역구를 싹쓸이했던 19대와 달리 원주을과 동해·삼척에서는 여당 후보가 탈락하고 야당과 무소속 후보가 당선증을 받아 유권자들이 제대로 된 갑질을 보여줬다. 20대 총선은 뒤늦은 선거구 획정과 공천파동으로 깜깜이 선거였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유권자들의 선택은 현명했고 권력에 엄중한 메세지를 던지는 민심의 실체를 확인하는 기회였다.

국민의 갑질이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권력의 속성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한다. 투표를 통하여 우리가 당선인들에게 위임한 건 권한이지 권력이 아니다.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을 활용해서 국민과의 약속을 이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권력에 취해 초심을 잃어버리는 정치인을 우리는 수없이 봐 왔다. 권력의 단맛에만 관심 있는 정치인은 더 이상 필요 없다. 표만 얻어가고 약속이행에 관심이 없는 정치인들은 데릴사위를 부려만 먹고 혼례를 시켜주지 않는 사악한 장인과 다를 바 없다. 우직하게 일하는 데릴사위 역할을 이제 당선자들에게 넘기자. 유권자들은 선거 때만 일회성으로 회초리를 들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 도민들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지 지켜볼 것이다.

강원도 당선자들에게는 또 다른 과제가 있다. 선거구가 재획정되면서 약화된 강원도 정치력의 회복이다. 헌재 결정에 따라 강원 지역구는 9석에서 8석으로 줄어들었다. 투표가치의 평등이 헌법적 요청이기는 하지만, 지역간 균형발전도 헌법 제123조에서 요구되는 국가적 의무다. 강원도는 유권자 중 농어민 비율이 높아 국회의원의 지역대표성이 특히 강조된다. 생활권역이 전혀 다른 지역을 인구수만을 기준으로 묶어 공룡선거구를 만드는 것은 민심을 왜곡하고 지역발전을 가로막는다. 헌재 결정의 취지를 허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예외적으로 특별선거구를 설치하는 등 지역 정치력의 회복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해 본다.

다시 <봄봄>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빙모님은 참새만한 것이 어떻게 앨 낳지유?”라는 사위의 물음에 장인은 답변을 못하고 허허 웃고 만다. 사실 점순이의 키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영감의 의지가 중요했을 뿐. 약속을 지키는 데 중요한 것은 관심과 의지다. 당선자들께서는 부디 예산 탓, 상황 탓을 하지 말아주시길. 국민들은 일회성 갑질로 멈출 만큼 우매하지 않다. 약이 오른 사위가 장인을 들이 받았 듯 국민들은 독기를 품고 있다가 다음 선거에서 그 화살을 날려버릴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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