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강하

강원대 HK연구교수

지난 두 달,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뉴스는 단연 선거였다. 공적인 자리든 사적인 일상의 자리든, 선거는 빠질 수 없는 화젯거리였다. TV, 신문, 라디오, 팟케스트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는 전문가들이 선거지형에 대한 분석을 내놓았고, 유권자들은 하루하루 변해가는 여론조사의 그래프를 흥미진진하게 바라보았다.

선거는 끝났고, 그 결과는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되었다. 얼핏 보기에 강원도는 그간의 구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 표라도 더 얻는 사람이 무조건 이기는 선거 시스템은 그 내용까지 온전하게 설명해주지 못한다. 실제로 강원도의 선거 면면을 들여다보면, 선거의 내용은 결과처럼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 않다. 상당한 득표수 차이를 보인 곳도 있지만, 박빙의 차이로 이긴 당선자도 적지 않다. 득표수가 다를 뿐, 단 한 표도 받지 못한 후보나 정당은 없다. 득표수에 따라 세분화해서 표현한다면, 유권자들의 생각은 당선자의 소속 정당에 따라 세 가지 색깔로 표현한 것처럼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다. 지난 선거의 결과는 사람들의 절망과 희망, 실망과 기대, 한숨과 환호가 어우러진 다양한 색의 모자이크로 나타낼 수 있을 것이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더 많은 목소리가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것이 항상 합리적이거나 옳은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인류사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 히틀러 역시 선거로 당선된 지도자라는 사실이 그 증거다. 그러니 선거의 결과를 단순히 승패나 시비의 문제로 결론지어서는 곤란하다.

선거결과에 따라붙는 ‘승리’나 ‘패배’와 같은 전투적인 수식어를 걷어내면, 선거의 결과는 ‘좀 더 많은 목소리’, ‘보다 적은 목소리’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선거가 끝난 지금, 당선자와 그 지지자들은 다른 목소리들을 진지하게 들어주고, 낙선자와 그 지지자들은 다수의 의견을 존중하되 위축되지 않고 그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내 주기를 기대한다.

공자(孔子)는 “잘 어우러지지만 서로 같지 않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정신을 말했다. 생각과 개성, 가치관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을 때, 더욱 다채롭고 역동적인 어울림을 기대할 수 있다. 고대 중국철학의 황금시기가 활짝 열릴 수 있었던 건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말과 글 덕분이었다. 백 가지 꽃이 저마다의 꽃과 향을 틔우고, 서로 다른 생각들을 앞 다투어 이야기하는 ‘백화제방(百花齊放)’,‘백가쟁명(百家爭鳴)’의 시대는 그래서 가능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논어’나 ‘노자’,‘장자’ 등은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냈던 시대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공자가 강조한 어울림(和)은 물리적이거나 강제적인 통합이 아니다. 공자의 제자인 유자(有子)는 “어울림(和)이 귀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어울림을 추구하지만, 예로 절제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행하지 말아야 한다(知和而和, 不以禮節之, 亦不可行也)”고 말했다. 조화로움 또는 어울림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강제적인 통합은 폭력이 될 수도 있다. 유자가 예의를 저버린 어울림의 위험성을 말하는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유자가 말한 ‘예’는 이 시대에 걸맞은 ‘인간에 대한 예의’,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배려로 바꾸어 읽어도 좋을 것이다.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그 누구에게라도 말이다. 화이부동, 존중, 배려의 꽃을 활짝 틔워, 온갖 꽃들이 만개하며 피어나는 사월의 봄보다 아름다운 화이부동의 강원도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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