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윤호

원불교 강원교구 교무

조선 후기의 유학자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은 일찍이 다음의 한시(漢詩)를 소개하였다. ‘처세유위귀 강강시화기 발언상욕눌 임사당여치 급지상사완 안시불망위 일생종차계 진개호남아(處世柔爲貴 剛强是禍基 發言常欲訥 臨事當如癡 急地尙思緩 安時不忘危 一生從此計 眞個好男兒).’ 풀이하면 ‘처세에는 유한 것이 제일 귀하고,강강함은 재앙의 근본이니라. 말하기는 어눌한 듯 조심히 하고,일 당하면 바보인 듯 삼가 행하라. 급할수록 그 마음을 더욱 늦추고,편안할 때 위태할 것을 잊지 말아라. 일생을 이 글대로 살아간다면 그 사람이 참으로 대장부니라’이다. 외세의 침입이 잦았던 당시는 분명 난세(亂世)였다. 난세를 살아가는 지식인이 내놓은 세상 살아갈 비방(秘方)을 요약하면 ‘지고 사는 것’이다. 어떻게 지는 것이 현실세계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고금을 막론하고 이기는 것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그보다 더 어려운 것을 꼽자면 아마도 ‘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지면서 살아갈 수 없는가 생각해보면 이기는 것은 곧 이익을 가져오고,지는 것은 손해를 감수해야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이익은 누구나 좋아하고 손해는 누구나 싫어하는 것이다. 이 간단한 셈법 아래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의 삼라만상은 펼쳐진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한가? 가끔 우리는 모두가 이기고자 하는 노력 속에 살면서 결과적으로 다함께 손해에 직면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이 비극은 정치,경제,외교 분야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우리 이웃과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수없이 발견된다. 그 바람에 미국의 경제학자 존 내쉬(John Nash)는 각자의 이기고자 하는 노력이 모두의 패배를 가져다준다는 ‘내쉬 균형’이라는 게임이론으로 1994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우리 사회에 ‘지는 것의 가치’를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아니,풀어서 말하자면 미시(微視)에서 패배하여,거시(巨視)에서 승리하는 길을 찾아가자. 우리 삶을 되돌아보면 미시에서 ‘나’는 졌지만,거시에서 ‘우리’는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얼마든지 보인다. 그러자면 옛 학자의 말처럼 늘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급할수록 늦추는,마음의 여유가 무엇보다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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