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경

춘천지법 기획공보판사

필자가 지난 해 8월부터 법원 공보업무를 맡아온 지 벌써 9개월이 되어 간다. 갈등과 분쟁을 재판을 통해 해결하고, 죄를 지은 사람에게 벌을 내리는 판결을 하는 것이 법관의 업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새로운 공보업무를 수행하려 하니 많이 낯설고 어려웠다. 공보업무를 맡은 판사는 법원의 주요 판결의 내용을 언론과 시민께 정확히 알리는 역할을 담당한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를 받아 언론사의 판결 문의나 재판 진행 경과 등을 확인하여 전하는 일을 하다보면 어느덧 시계는 언론사의 마감시간이 지나 있고 그제야 불이 나던 전화기에는 평온이 찾아온다. 이렇듯 공보업무에는 언론사의 판결 문의에 관한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매순간 핸드폰을 확인하는 일, 판결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관련 지식을 공부하는 일, 매일 언론과 인터넷에서 논의되는 법원의 재판에 관한 내용을 확인하는 일이 당연히 포함된다.

요즘에는 신문, 방송뿐 아니라 인터넷과 SNS를 통한 여론 형성이 매우 활발하다. 그날 선고된 판결 내용이 순식간에 인터넷을 통해 알려지고, 댓글 등을 통하여 직접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며 이를 공유하는 쌍방향 소통이 일상화 되었다. 이러한 언론과 인터넷을 통한 여론 형성이란 큰 흐름 앞에 이제 더 이상 법정은 법원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오늘날 시민사회는 ‘여론’이라는 또 다른 법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형사재판에서 가장 어려운 양형 역시 여론이란 법정에서 자유로이 토론됨으로써 우리 사회가 어떠한 범죄에 대하여 위협을 느끼고 이를 엄벌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공정함과 정의로움이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알 수 있다. 법과 재판은 결국 시민 사회의 기본적 인권과 권리를 보호하고 우리 사회가 성숙하게 발전하도록 하여야 그 가치가 발휘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판결에 대한 관심과 논의는 어쩌면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다.

다만 재판에 있어서도 공정하고 올바른 결론에 이르기 위해서는 진실한 증거자료가 중요한 것처럼, 여론이라는 법정에서도 무엇보다 재판의 투명성과 판결의 정확한 전달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하여 헌법은 재판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누구나 법정에 와서 재판을 방청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판결서사본 제공신청’제도에 따라 ‘누구나’ 판결서 사본 비실명제공 요청을 할 수 있다. 춘천을 포함한 전국 법원은, 일반 시민이 관심을 가질만한 판결, 공개하는 경우 이를 통해 유사한 분쟁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판결을 법원 홈페이지에 비실명화하여 공개하고 있다.

지난 해 6월에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가 허용되는가’에 관한 공개변론이 있었다. 2003년부터 시작된 대법원 공개변론은, 시민의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고 우리 사회에서 주요한 정책과 가치판단이 필요한 사건의 경우 해당 분야 전문가나 참고인의 의견을 직접 대법원 법정에서 듣고, 이를 공개한다. 대법원 재판을 방청할 수 있고, 재판 전 과정이 방송되기도 한다. 이로써 재판의 투명성을 높이고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에 관하여 법원과 시민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여론이란 법정의 법관인 시민은 우리 사회의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법원의 노력은 어떠하여야 하는지 판단한다. 법원은 재판의 독립을 지키면서도 큰 호흡을 두고 여론을 확인함으로써 공정한 결론과 올바른 판단을 위해 계속 노력한다. 이렇듯 법원과 여론의 간극을 점차 좁히고,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성숙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야말로 여론이라는 법정의 가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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