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한길

환동해학회 편집위원장

어버이날을 맞이하여 5월에 소개할 곳은 동해시이다. 어디든지 효자와 열녀가 없는 곳이 없겠지만 유독 동해시는 인구에 대비하여 효자, 열녀의 기록이 유독 많기 때문이다.

어제가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이 제정된 것은 1973년이지만, 그 연원은 조금 더 된다. 1956년 ‘어머니날’이 지정되어 여러 행사를 진행해 오던 과정에서 ‘아버지의 날’도 거론되었고, 이를 통합한 개념으로 ‘어버이날’이 등장한 것이다.

이날에는 전국에서 효자효부상을 수여하고, 또 이날을 전후하여 경로주간을 설정하여 다양한 웃어른 공경행사를 진행한다.

어버이날이 제정된 후 7년여가 흐른 후 강원도 동해안에 한 도시가 탄생했다.

오늘날 ‘해 뜨는 동해’란 브랜드로 널리 알려진 동해시인데 1980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묵호읍과 북평읍을 합해 새롭게 탄생했다.

초창기 동해문화원장으로 재임한 김시래(1982-1997 재임)는 동해시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책 발간을 시작했는데, 그 처음이 『내 고장 자랑 동해시 향토사』란 책이었다. 이 책 제1집(효열편)의 서문을 보면 <효열의 고장 동해시>란 구절이 나타난다. 그러니까 필자의 상기 글 제목은 이 책의 서문에서 따온 것이다. 이 책은 효자, 열녀와 관련한 72건의 사례들을 취합했다. 그 대목들 중 일부를 발췌해본다.

중종조 효자 영일 정씨 정충원은 아버지가 병이 들어 생선회를 먹고 싶다 하였다. 그래서 시냇가에서 울었더니 잉어가 두 마리 튀어 나와 이것을 대접하니 병이 나았다.

종종 전래동화에서 볼 듯한 이야기이지만, 허구의 이야기가 아닌 진실이다. 나라에서는 효자문을 내렸고 당시 부사 이규현이 관련 글을 지었다.

삼척 김씨 김겸은 어머니의 병이 위급하자 손가락으로 약을 지어 드리니 병이 나았고, 부친상을 당하여 시묘를 살았다.

남양 홍씨 홍양해는 송정 사람으로 양친이 함께 돌아가시니 시묘를 6년이나 살았는데 눈물에 풀이 마를 날이 없었고 흰 새가 같이 울면서 날아갔다고 한다.

강릉 최씨 최진후 역시 6년간 시묘를 살았다. 이들 3인은 북평 3대효자로 추앙받았고 효자각이 섰다.

열녀 전주 이씨는 고종 때 열녀문을 받았다. 어느 날 남편이 산에 나무를 하러 가 돌아오지 않기에 남편을 찾으러 산에 갔더니 남편이 곰에게 물려가고 있었다.

달려들어 남편을 구했으나 이미 곰에게 물린 남편의 온 몸에는 상처가 가득하였고, 시간이 지나자 구더기가 우글거렸다.

이씨는 이 상처를 입으로 빨아내었고, 머리칼을 잘라 약을 사 봉양하기를 3년여를 하였다. 이로써 비로소 남편은 완치되었다. 열녀 평강 채씨는 순종 때 열녀문을 받았다. 남편이 병이 위독하자 대신 죽게 해 달라고 하늘에 빌었더니 지나가던 새가 배(梨)를 떨어뜨려 그 배를 먹고 완치하는 기적이 있었고, 또 병이 재발하자 이번엔 붉은 열매를 떨어뜨려주었다. 남편 상을 당해서는 3년간 상막을 지켰다.

대부분이 질병과 관련이 있다. 병이 들어야 효자효녀효부가 나고 열녀가 난다고 했다. 질병 없이 편안히 임종을 하는 부모를 둔 자식들이 효자효녀효부열녀로서 효자각이나 열녀문이 서지 못한다는 사실은 뒤집어 생각해보면 아이러니컬하다.

사실 효자문, 열녀문이 서지 않는다 할지라도 부모님이 편안하게 수(壽)를 누리시기만 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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