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

문학박사

자전거 핸들을 잡았다. 페달을 밟자 아카시아 꽃향기가 살짝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을 가르자 자전거와 한 몸이 된다. 자전거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차를 타고 지나칠 때와 또 다르다. 풍경 속으로 질주하니 주변은 모두 살아서 움직인다.

강변도로로 진입하자 공사표시판이 서 있다. 자전거도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고동색 데크가 인도 옆으로 깔리고 있다. 몇 달 후면 자전거들이 바람을 가르며 달릴 것이다. 소양강이 낙조에 붉게 물들면 페달을 잠시 멈추고 하루의 고단함을 잊을 것이다. 공사 현장인 봉의산 뒤 소양강가에 소양정이 있었다. 다산 정약용은 이곳에 배를 정박하고 하룻밤을 보내며 시대를 아파하는 시를 지었다. 정약용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시를 짓던 문화공간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안내판이 세워질 것이라 믿는다. 마침 적당한 공간도 있으니 조그만 쉼터를 만들면 금상첨화다.

다산은 두 번 춘천 여행길에 올랐다. 유배에서 풀려나 강진에서 마치지 못했던 저술 작업을 계속하다가,1820년 봄에 큰형이 아들을 데리고 춘천에 와서 며느리를 맞아올 때에 배를 함께 탔다. 이때 청평사까지 발길이 닿았고 수십 편의 시를 남겼다. 1823년엔 손자를 데리고 춘천에서 며느리를 맞게 되었다. 작은 배를 끌고 춘천에 왔다가 내친 김에 화천 사창리로 말머리를 돌렸다. 수십 편의 시가 구체적인 여정을 알려준다.

두 번 여행의 결과물이 ‘천우기행’,‘산행일기’,‘산수심원기’다. 고향에서 출발해서 춘천을 경유하여 청평사와 사창리 곡운구곡을 유람하며 보고 느낀 것이 자세하다. 멋진 곳이 보이면 시로 그림을 그렸다. 점심을 먹거나 하룻밤 자면서 시를 짓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사라진 주막과 나루터가 시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댐이 건설되면서 이제는 흐르지 않는 북한강의 여울 36군데가 밤낮으로 울었다.

지난겨울에 북한강자전거길을 걸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다산의 고향인 능내리에서 출발하여 춘천을 지나 화천 사창리에서 걸음을 멈췄다. 처음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으나 몇 구간으로 나누어 걷다보니 어느새 화천이었다. 날카로운 강바람 속 자전거 길에 인적은 드물었다. 어쩌다 라이더를 만나면 반갑기조차 하였다. 혼자 걷기도 하였고,몇몇 사람과 동행하기도 했다. 북한강 굽이굽이 별장이 들어섰다. 경관이 좋은 곳은 어김없이 계단식 택지가 주인을 기다리는 중이다. 여울마다 마을마다 시를 남긴 곳은 어김없이 펜션이 들어섰고,댐이 만든 인공호수 덕분에 수상레저 시설이 강변에 즐비하다. 카페와 음식점들이 사이사이로 비집고 들어섰다.

한겨울에 북한강을 걸었던 까닭은 다산의 글을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걸으면서 배를 멈추고 쉬던 곳에 앉아서 글을 읽었고,점심을 먹은 곳에서 김밥을 먹었다. 시를 읊은 곳을 찾아 시를 소리 내어 읽었으며,하룻밤 머문 곳에서 주막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북한강의 이곳저곳에 남아있던 다산의 흔적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면 볼 수 없었던 풍경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의암댐을 향해 핸들을 돌렸다. 의암호에 드리운 삼악산이 바람에 출렁인다. 다산은 의암댐 부근을 지나면서 하늘과 땅이 갑자기 확 트이는 듯하며,하늘이 만든 특별한 곳이라고 읊었지. 강촌까지 이어진 긴 협곡을 현등협이라 부르고,양쪽 절벽이 서로 맞닿을 듯해서 어깨 부딪칠까 걱정스럽다고 시를 지었지. 삼악산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며,그 아래 아직도 요란하게 소리 내는 여울도 시심을 건드렸다. 아! 이제야 북한강은 시가 흐르는 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디 북한강뿐이랴.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