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범선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보컬 및 기타

서울 강남에서 로큰롤 음악가로 살다가 가끔씩 춘천에 오면 할 게 없다. 심심하다. 그럴 때면 나는 으레 막국수나 먹으러 간다. 즐겨 찾는 막국수집이 몇 군데 있는데, 맛이 전부 제각각이다. 하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춘천 막국수는 맛이 없다. 정확히 말하면 그 맛없는 맛에 먹는다. 그러니 맛이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막국수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음식 중 하나라고 믿어왔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가장 비참했던 점은 막국수를 먹지 못함이었다. 한식당에서 비빔밥, 불고기, 순두부찌개는 팔아도 막국수는 팔지 않았다.

칼 슈츠라는 나의 대학시절 절친은 ‘미국의 강원도’라고 볼 수 있는 아이다호 주 출신이었다. 감자로 유명한 주다. 나는 비빔밥을 먹으면서 그 친구에게 막국수 예찬론을 펼치곤 했다.

“너는 막국수를 먹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한국에 가야한다. 신세계를 경험할 것이야.” 같은 감자 바우이니 막국수의 정취도 이해하리라. 졸업 후 칼이 실제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그에게 막국수를 먹였다.

결과는 민망했다. “왜 이런 걸 먹느냐”는 눈빛. 편육을 시켜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상했어야 한다. 서울서 시집 오신 나의 어머니도 막국수를 싫어하시지 않게 되는데 이십년 가까이 걸렸다.

아직도 딱히 좋아하시진 않는다. 타지 사람들은 막국수의 매력을 쉽게 느끼지 못한다. 뭐가 없기 때문이다. 부산 밀면은 적어도 육수는 사골로 만든다. 평양 냉면은 고기도 한 점 얹어 주는가 하면, 함흥 냉면은 양념장이 아주 매콤하다.

이에 비해 춘천 막국수는 양념장도 밋밋하고, 메밀면이 툭 끊기기 일수이며, 고명도 부실하다. 원래는 닭육수를 썼다고도 하나 지금은 동치미 국물이 대부분이다. 기름기가 전혀 없다. 소화는 얼마나 잘되는지 먹고 나면 금방 꺼져서 배가 고프다. 미국 한식당에서 팔지 않는 이유가 있다.

막국수는 막국수만 먹을 때 가장 위대하다. 감자전 몇 장 곁들여 먹는 정도는 괜찮다. 설탕, 겨자, 식초도 살짝만 뿌려야 한다. 막국수는 맛없게 먹을 때 가장 맛있다.

‘막 만들어서 막 먹는 국수’라서 막국수 아닌가. 화전민의 음식이다. 흔히 알려진 막국수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을미사변 이후 춘천에서 봉기한 의암 류인석의 의병부대는 일본군을 피해 산 속에 들어가 화전농업으로 연명했다. 그들은 한일병합 이후에도 화전을 떠나지 않았고, 재배한 메밀을 마을에 들고 나와 팔았다. 이 메밀을 국수로 만들어 먹으면서 춘천 막국수가 자리잡았다.’

사실인지는 모르겠다. 너무 멋진 유래라서 의구심이 든다. 막국수란 꼭 의병들이 아니더라도 화전민들이 쉽게 먹기 위해 만든 음식일 것이다.

팔도에서 가장 먹고 살기 힘든 강원도였기에 그곳에서 탄생한 막국수는 가장 먹기 쉬운 국수였다.

포어이바흐는 “사람은 곧 그 사람이 먹는 음식이 결정한다”고 말했다. 나는 “음식은 곧 그 음식을 만든 땅이 결정한다”고 생각한다. 막국수의 맛은 내게 곧 강원도의 맛이고 춘천의 맛이다. “맛있다”, “맛없다”의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생각해보니 “심심하다”는 말도 부정확하다. “담백하다”가 좋겠다. 사전을 보니 ‘담백하다’는 ‘아무 맛이 없고 싱겁다’는 뜻도 있지만 ‘욕심이 없고 마음이 깨끗하다’는 뜻도 있다. 그 말 참 적절하다. 막국수는 아무 맛이 없고 싱겁게 먹을 때가 진짜다. 그 맛 참 담백하다. 춘천처럼. 강원도처럼.

내일까지는 춘천에 있어야하는데 딱히 할 게 없다. 심심하다. 아니 담백하다. 나는 아무 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병풍과 같이 나를 둘러싼 이름모를 산들은 푸르고, 창문 밖으로 느껴지는 새벽 안개는 산뜻하다.

나는 욕심도 많고 마음도 불결하건만 나의 고향은 50년 전통 원조 막국수집마냥 한결같구나. 배가 고프다. 서울에 올라가기 전 막국수나 한 그릇 더 먹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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