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신록의 5월인데 마음이 편치 않다. 창밖은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가 들리는 데 목하 우리경제 돌아가는 모습은 모짜르트의 레퀴엠 만큼이나 무겁다. 우리경제가 긴 세월 어려움을 겪을 것 같은 전조가 이미 가시적으로 표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이란 단어가 연일 신문의 큰 지면을 차지하고 있다. 90년대 말의 외환위기,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아픈 기억들이 다시금 뇌리를 스친다.그런데 작금의 상황은 이전의 두 위기 때와는 달리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여 더욱 암울하다. 이전의 두 위기는 외환부족과 헤지펀드의 공격, 뉴욕발 자금시장 경색 등과 같은 다소 일시적인, 외부적 충격에 의한 것이라서 비교적 빠른 시간에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한 우리경제의 구조조정 과정은 대형 산업 중심으로 성장한 우리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세계경제의 순환이 맞물린 문제이기 때문에 긴 세월을 요구할 것이다.

한국경제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요소가격균등의 법칙’이 작동하는 순환의 하강국면에 직면해 있다. 이 법칙이란 상품교역이 자유롭게 일어나면 교역국의 요소가격, 임금도 교역상대국 수준으로 높아져 간다는 것이다. 70년대 이후 우리경제가 고도성장을 해온 것도 이 법칙에 순응한 덕택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산업의 경쟁력이 부침한다. 쉽게 설명하면 전후 팍스 아메리카를 견인했던 미국의 자동차, 철강, 전자산업은 어느 정도 기술수준을 갖추었으나 상대적으로 저임금 국가였던 일본과 독일의 도전에 그 아성을 내 주었고 일본과 독일이 미국을 상대로 교역하며 고임금 국가로 성장하자 선진국 기술을 열심히 모방한 저임금 국가였던 한국을 위시한 아시아의 용들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다. 독일과 일본이 성장하면서 미국의 주요산업이 어려움을 겪었고 한국이 자동차, 전자산업의 성장을 만끽하며 소득수준을 높여가던 시절 일본과 독일은 긴 세월 어려움을 겪었다. 마찬가지로 이제 상대적으로 고임금 국가가 된 한국도 중국 등 이머징국가에 그 자리를 내주고 어려움을 겪을 것이 눈에 선하다. 우리 GDP의 3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자동차, 조선, 반도체 및 전자 등 한국경제의 주력산업부문이 목하 이 같은 국면에 처해있다.

이를 극복하는 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우리의 현 임금수준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이들 주력산업이 고부가가치화로 환골탈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의 길은 새로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미국이 소위 ‘GAFA노믹스(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라는 신산업으로 먹거리를 찾는 데 근 30년이 걸렸다. 독일 자동차산업이 다시금 경쟁력을 되찾는데 근 20년이 걸렸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의 고난을 겪고 최근에야 회복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가 어떤 길을 거쳐 회복할 것인지는 예측을 불허한다. 기술발전의 전개 양상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모방 기술, 짝퉁 아이디어가 아니라 개척자의 기술,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다행히 우리 경제사회는 이러한 문제점을 익히 인식하고 있다. 창의적 인재를 키워내는 교육제도 개혁, 개방형 기술혁신시스템 구축, 혁신기업 지원형 금융시스템 구축, 경제력집중 완화 등의 과제는 그러나 이해관계집단의 반발 및 사회적 합의 도출 등을 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성장이 꺽인 것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것저것 단기대책을 열심히 세우는데 급급할 때가 아니라 차분히 시스템을 정비하는 데 정성을 들일 때이다. 좋은 장맛을 위해서는 적당한 온도와 습기, 햇볕이 들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고, 숙성의 기다림이 필요하다. 한국경제는 그것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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