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욱현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

흔히 배우를 오디션인생이라 한다. 원하는 배역을 맡기 위해서 오디션은 (심지어 간단한 면접 형태이다 하더라도) 필수이다. 오디션은 이제 막 시작하는 신인 배우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 노배우도 젊은 연출 앞에서 오디션을 봐야 하는 게 피하기 힘든 절차이다. ‘이 정도 경력이면 그냥 모셔가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볼멘소리를 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연출가와 약속을 잡아야 하고 적임인지 확인하는 절차는 거쳐야 한다. 일본의 한 노배우는 매년 1월 1일이 되면 젊은 연출가들에게 연하장을 보낸다고 한다. ‘난 건재하고 언제든지 오디션을 볼 용의가 있다’라고. 어찌 생각하면 구차하다 할 것이지만 우리 업계의 시각으론 현명하고 용기 있는 배우의 처사이다. 배우는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인 것이다.

오디션은 공정함이 생명이다. 오디션의 가장 큰 뒷말은 이미 내정해 놓고 오디션을 보았다, 라는 이야기다. 그런 오디션에 응한 배우들이라면 모두 분노할 수밖에 없다. 배우들도 나름 정보망이 있어서 그런 반칙이 자주 일어나는 오디션에는 절대 응하지 않는다. 결국 소문이 잘못 난 그 오디션 주체는 사람들은 모이지 않고 계속해서 반칙 오디션을 열 수 밖에 없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반대로 공정한 오디션이라는 소문이 나면 그 오디션은 대박이 난다. 유망한 배우들이 경쟁장에 나타난다. 기다리는 입장에선 반갑고 고맙다. 배우들은 오디션에 너그러우며 공정한 경쟁장이라면 자신을 내보이는데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배우들은 쿨한 사람들이다. 공정한 오디션은 그래서 그들에 대한 존중이다.

도립극단은 배우 단원이 없다. 2014년 창단 때부터 모든 출연 배우를 공개오디션을 통해 선발하고 있다. 도립극단은 늘 좋은 배우들을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두 번의 오디션이 있었고 오디션장은 그 자체로 드라마틱했다. 기대했던 배우가 정작 오디션 점수가 약해 떨어지기도 했고 의외의 배우가 열심히 준비해 당당히 무대에 서기도 했다. 올해 신작 정기공연을 앞두고는 더욱 고민이 많았다. 올해 선보일 작품은 일종의 마당놀이 형식의 ‘메밀꽃 필 무렵’이다. 봉평이 고향인 이효석 소설가의 원작을 2016년 모던한 시각으로 마당에서 펼칠 예정이다. 실내 무대와 비교해 마당은 잔인하다. 조명으로 무대를 집중시켜주고 관객은 조용하게 객석에서 관극하면 되는 극장이 아닌 것이다. 서서 보고 지나다 보고 앉아서 보다가도 재미없으면 그냥 일어나 가버리면 그만인 게 야외무대이다. 배우들은 그 환경을 대낮에 알몸으로 서 있는 느낌이라고 얘기한다. 조금 지난 얘기지만, MBC마당놀이의 인기에는 김성녀,윤문식,김종엽이라는 걸출한 세 마당 배우가 있었다. 마당 관객들은 그 세 사람의 등장만으로도 눈을 고정하고 마음을 고정할 수 있었다. 마당 연극에선 그만큼 에너지 넘치고 재담 넘치는 배우에의 의존도가 높은 것이다. 도립극단으로선 고민이 컸다. 좋은 배우들이 오디션에 참여할까? 서울 유능한 배우들이 춘천까지 와서 두 달간 연습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스케쥴이 붙잡힌 채 몇 달을 강원도 전역을 다니며 순회공연도 해야 한다. 서울 뿐 아니라 춘천 외 지역의 강원도 배우들도 고민은 마찬가지다. 그 고민 속에서 지난 3월 오디션을 맞이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강원도 전역에서 모인 배우들을 더해 MBC 마당놀이를 주관했던 극단 미추에서 20년간 마당극을 했던 배우, 그리고 TV에서 간혹 얼굴을 비추던 텔런트, 그리고 강원도가 고향이지만 서울에서 활동했던 젊은 배우들까지. 마음 같아선 모두 기용하고 싶을 정도로 참가자들의 수준이 높았다. 이런 현상은 이제 막 출범한 강원도립극단이 전국 단위로 조금은 알려졌음을 반증한다고 자체 분석하였다. 현재 선발된 배우들은 초연을 위해 맹연습중이며 오는 6월 16일 횡성을 시작으로 순회공연에 돌입한다.

강원도는 오늘도 사람이 필요하다. 오늘도 강원도 어디선가 오디션이 열릴 것이다. 공정한 오디션이 강원도를 성장시킨다. 전국의 우수한 인재들이 강원도 오디션에 몰려들게끔 만들어야 한다. 강원도 가서 일하고 싶다. 강원도는 기회의 땅이다. 그 얘기가 전국에 둥둥 떠다녀야 한다. 반칙은 악순환을 부르고 공정함은 역동적인 미래를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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