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강하

강원대 HK연구교수

“푸른 푸른 푸른 산은 아름답구나. 푸른 산 허리에는 구름도 많다. 토끼구름 나비구름 짝을 지어서 딸랑딸랑 구름마차 끌고 갑니다.” 예전에는 이런 노래를 많이 들었다. 꽃이 앞 다투어 피어나는 4월을 지나, 본격적으로 신록이 시작되는 시기에 흔히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 아파트는 높지 않았고, 눈 닿는 곳곳에는 산이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아파트에 살았는데, 예전에는 제법 전원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가까운 곳에는 논밭이 있어서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렸고, 창을 열어놓으면 뒷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덕분에 에어컨이 필요 없었다. 어느 날인가부터 개구리 울음소리가 희미해지더니, 작은 산들이 모래먼지와 함께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었다. 중장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아파트와 빌라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산을 밀어낸 빈 터에는 속속 진출한 굴지의 건설사들이 아파트를 세우기 시작했다. 춘천-서울 고속도로 개통 이후 무려 25%나 올랐다는 집값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꿈과 낭만의 도시였던 춘천은, 어느 새 안정적인 투자처로 각광받는 도시가 됐다. 인구 30만이 채 안 되는 도시 춘천에는 수요를 넘어서는 아파트가 세워지고 있다. 분양도 되지 않은 빈 아파트가 있지만, 그 옆에서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듯 새로운 아파트가 부지런히 올라가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렇게 빈 아파트가 생겨나도 집값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집값은 평범한 직장인이 십년 이상을 일해야 살 수 있는 사치품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는 많지 않다.

도대체 언제부터 집이 ‘안락함’,‘안전’보다 ‘수익률’을 먼저 따져야 하는 것이 돼버린 것인지 모르겠다. 사실, 오랜 시간동안 부동산은 부를 증식시키는 좋은 수단이었다. 지금도 유명인들은 돈을 벌면 땅이나 건물을 사들여 부를 증식시킨다. 사람들은 그들을 부동산재벌이니 부동산황제니 하며 추켜세운다. 사람들의 반응에서는 은근한 질시와 부러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긴, 미국에서도 부동산 재벌 트럼프가 대통령을 꿈꾸고 있으니 그게 우리만의 현실은 아닌 듯도 싶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런다고 해서, 그게 꼭 바른 길이란 법은 없다.

나는 누구보다 강원도의 성장과 발전을 바라지만, 집값이나 땅값의 상승이 그 유일한 증거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강원도의 경제적 가치는 집값이 아니라, 강원도가 가진 건강한 자연에서 찾을 수 있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강원도를 찾는다. 경제발전에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강원도는 결과적으로 환경의 훼손을 덜 겪었다. 사람들을 꾸준히 불러 모으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다. 몇 달 전에 예약이 마감된다는 강원도의 산과 들, 골짜기는 오히려 그들의 민낯으로 진검승부를 겨루고 있는 셈이다.

불과 며칠 전에도 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해 녹지 규제를 과감하게 해제하겠다고 발표한 기사를 읽었다. 해제되고 느슨해진 법망 사이로 산은 사라지고, 도로와 아파트가 놓일 것이다. 순식간에 집을 잃은 야생동물들은 길 위에서 인간을 위해 ‘순교’하게 될 것이다. 한쪽에서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아우성인데, 산은 자꾸 사라지고 아파트는 점점 많아진다. 산림과 녹지는 지구의 허파라고 말하면서, 그 허파를 자꾸만 도려낸다. 그들의 고통은 결국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될 것이다. 발전을 멈추자는 말이 아니다. 한번쯤 멈추어 숨을 고르고,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면서 긴 호흡으로 ‘상생’의 길을 한번쯤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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