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원

소설가

봄은 언제나 꽃과 잎의 풍경이다. 비가 한번 내릴 때마다 기온이 쑥쑥 올라가면서 아이들 표현대로 꽃이 펑펑 터지고, 잎도 쏙쏙 나온다. 많이 내리지는 않아도 사흘이고 닷새 사이로 비가 내려 마른 나뭇가지를 적시고, 숲을 적시고, 길을 적신다. 방안에서 문을 열고 바라보면 아파트 정원의 작은 나뭇가지에 은구슬 같은 동그란 물방울들이 사이좋은 형제들처럼 조르르 매달려 있다. 그 봄 풍경이 하루 자고 일어날 때마다 세상이 더 환해진다.

그러나 언제까지 봄이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어릴 때 기억으로 봄과 여름 사이엔 언제나 단오가 있었다. 우리 곁에 단오가 오고 있는 것을 알려주는 몇 개의 전령사가 있다.

소리로 그것을 알려주는 것은 뻐꾸기다. 산에서 뻐꾹 뻐꾹, 하고 뻐꾸기 소리가 들리면 이제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가 보다 생각했다. 그 뻐꾸기 소리가 ‘뻐꾹 뻐꾹’ 하다가 ‘뻐꾹 뻐꾹, 뻑뻐꾹’하고 빨라지면 여름이 시작된다. 뻐꾸기 소리는 봄이 간다는 인사고, 여름이 온다는 인사이기도 하다.

그러면 대관령 동쪽 마을에 살던 우리가 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단오는 언제 올까. 어린 시절 우리는 그 길목을 나무의 모습으로 정확하게 짚어냈다. 집집마다 마당가엔 감나무 몇 그루가 서 있지만 감꽃은 언제 피는지도 모르게 피어버린다. 어떤 풀과 어떤 나무의 꽃도 처음 피어날 때 사람들의 주목을 끈다.

그러나 꽃중에서도 감꽃은 필 때보다 떨어질 때 주목을 끈다. 넓은 감잎 속에 언제 피었는지도 모르게 노랗게 피었다가 질 때는 공중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마당에서 탁탁 튀어오르듯 감꽃이 진다. 그러면 동네 아이들 모두 바가지를 들고 감꽃을 주으러 다닌다. 그걸 실에 꿰어 목에 두르기도 하고, 먹기도 한다. 감꽃은 씹으면 생감을 깨물었을 때처럼 떫은맛이 나고, 갑자기 입안에 무언가 한가득 들어온 듯한 느낌이 든다.

감꽃이 피었다 떨어지면 단오가 다가온다. 그리고 우물가든 담장가든 앵두나무 가지 끝마다 구슬처럼 붉은 열매가 가득하면 단오가 온다. 처음엔 희끗하던 열매가 통통하게 과육을 키우고, 이내 붉은 빛이 돌면 단오가 다가오고 여름이 다가오는 것이다.

봄날 종달새 높이 날던 푸른 보리밭이 어느새 황금물결로 출렁일 때, 그 밭둑가에 산딸기가 익고 뽕나무 오디 열매가 검붉게 익으면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단오가 다가온다. 우리는 나무와 나무에 달리는 여러 열매의 모습으로 단오를 알았다.

특히나 강릉단오제는 2005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인류문화유산 걸작’ 중의 하나로 선정되었다. 그때 단오 명절의 유래와 기원의 원전이 되는 중국의 단오도 함께 신청 접수되었는데, 유네스코 심사단이 중국 단오보다 강릉단오제를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선정한 것이다. 중국 단오는 멱라수에 몸을 던진 시인 굴원의 전설 속에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의 단오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민족의 생활 속에 축제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 우리나라에서는 ‘종묘제례악’과 ‘판소리’에 이어 세 번째로 ‘인류 무형 문화유산’ 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그때 유네스코 심사단이 여러 날 강릉단오제를 둘러본 다음 심사소감으로 “아직도 인류에게 이런 축제가 남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렇듯 강릉단오는 시민 모두의 축제이며 또한 시민 모두의 힘으로 만들어낸 문화의 기적인 것이다. 모두 내가 참가하지 않으면 왠지 단오가 부실해절 것 같은 마음이 들어 저절로 단오장으로 발길이 이어지는 것이다.

자 모두들 하던 일 잠시 쉬고 단오장으로 가자. 정말 흥겨운 축제가 어떤 것인지 저절로 어깨춤이 추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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