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희경

춘천지법 기획공보판사

필자가 지난해부터 초중고등학교 찾아가는 법률강연이나 법원에 견학 온 학생들과의 대화로 만난 아이들의 수가 꽤 많다. 법은 왜 필요한지, 법원은 어떠한 일을 하는지, 어떻게 하면 법조인이 되는지, 기억에 남는 재판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과 나는 법원과 꿈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 안에 들어와 있다.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왜 법관이 되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아이들이 법원과 함께 꿈을 키울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 아닐까하는 생각에 그 시간의 진지함이 가볍지 않다.

지난 주 법원에서 개최한 런투유(Run to you) 행사 때 만난 보호소년과의 점심식사가 기억난다. 런투유 행사는 매년 춘천법원 판사와 직원이 춘천소년원을 방문하여 보호소년과 같이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행사다. 소년들과 점심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중 문득 나와 소년들의 공통점을 알게 되었다. 바로 모두 검정고시를 봤다는 것.

“검정고시 보고서도 판사 될 수 있나요?”하며 놀라던 학생들의 표정과 함께 나는 외국어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가 끝내는 검정고시를 보게 된 과거를 떠올리게 되었다. “그럼. 될 수 있지. 그런데 나도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지나왔어. 시험과 경쟁으로 힘들어 하고, 방황도 하고. 그런데 법관이 된 지금도 매일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일이 쉽지가 않아. 아마도 평생 그렇지 않을까?”

“그런데말야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서 열심히 하다보면, 그렇게 노력의 시간을 지나보면 어느새 자신도 생각하지 못했던 사람이 되어 있을꺼야.”

얼마 전에 본 ‘The Angel's Share’라는 영화에는, 주인공인 보호소년이 감독관의 도움으로 자신이 위스키를 감별하는 뛰어난 미각을 가졌음을 알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이러한 재능으로 위스키 감별사라는 직업도 갖고 꿈도 이루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니 훌륭한 위스키가 되기 위해서는 오크통 안에서 매우 긴 시간동안 숙성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좋은 위스키가 되기 위해서는 두껍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오크통 안에서 자신을 갈고 닦아 순수한 위스키가 되는 시간을 견디어 내어야만 한다. 그 기나긴 과정을 지나면 처음의 향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묵직하고도 그윽한 향을 지닌 위스키가 되어 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자연 증발 현상이 일어나 위스키의 양은 처음 보다 2% 정도 줄어드는데, 그 줄어든 위스키를 ‘천사의 몫(Angel's share)’이라 부른다고 한다. 얼마나 위트 있는 표현인가. 좋은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마음과 정성을 다하는 외에 천사의 기도도 필요했던 거겠지. 위스키가 익어가는 시간만큼 좋은 결과물을 위해 같이 기도해준 천사들에게 그 몫만큼은 충분히 나누어야겠지.

‘무언가 좋은 것, 훌륭한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이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법원 역시 좋은 곳, 신뢰의 최종 도착지가 되기 위해서 노력의 시간이 필요하다. ‘법원이 더욱 성숙하게 익어가기 위해 견디어 내고, 노력하면. 그리고 그 시간을 우리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함께 해 준다면 멋진 법원이 되지 않을까. 그리고 그 결과물은 위스키에서의 angel’s share처럼 천사와도 같은 아이들의 몫이다.’

법원을 찾은 아이들의 꿈이 익어가는 시간, 법원을 찾은 사람들의 신뢰가 쌓여가는 시간. 그 시간을 법원이 함께 할 수 있고, 그만큼 꿈과 한 걸음 가까워 질 수 있다면… 그런 후에 그 결과 몫은 올곧이 우리들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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