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범선

밴드 ‘전범선과 양반들’

보컬 및 기타

영국이 결국 유럽연합에서 탈퇴했다. 어리석은 결정이었다. 거의 모든 전문가가 반대했다. 경제적, 정치적 재앙이다. 조사에 따르면 상류층, 청년층, 혹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일 수록 잔류를 원했다. 노동계급, 노년층, 혹은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일 수록 탈퇴를 원했다. 만약 영국 지배계급 마음대로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다.

하지만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이 중요한 사안을 국민 투표에 부쳤고, 영국 국민은 어리석은 짓을 했다. 미국 언론인 존 캐시디는 “영국인들은 더이상 미국인 보고 멍청하다고 놀릴 수 없다”고 조롱했다. “미국인들이 연말에 트럼프를 뽑지 않는 이상.” 그렇다. 도날드 트럼프 같은 선동가를 대통령으로 뽑는 국민을 현명하다 할 순 없겠다. 그런데 영국인들도 나이젤 파라지 같은 선동가의 손을 들어준 마당에 미국인들이라고 못 할까?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지금 어느 때보다 높다.

1930년대가 생각난다. 대공황으로 인해 자본주의 및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회의가 팽배하던 시절, 서구 민중은 파시즘과 공산주의에 열광했다. 히틀러는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였다. 외국인 혐오적이며 민족주의적인 정치 수사가 난무했다. 자본가를 힐난하면서 그 뒤에 유태인이 있다고 모함했다. 무솔리니는 로마제국의 옛 영광을 되찾자고 국민을 현혹했다. 극우 선동가들은 제도권의 부패와 무능을 공격하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진짜 민중을 대표하는 민주주의적 지도자라 외쳤다.

물론 트럼프는 히틀러가 아니다. 파라지도 무솔리니가 아니다. 그러나 작금의 위기를 간과해서는 아니된다. 1930년대 서구 민중이 중도 정당들을 버리고 극우와 극좌를 선택했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크게 두 가지다.1)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 2)제도권 자유주의 정당들에 대한 불신. 1930년대에는 이것들이 히틀러와 무솔리니와 스탈린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면 2010년대에는 파라지와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에 대한 지지로 이어지고 있다. 극우는 이러한 분노를 이민자에 대한 혐오로, 극좌는 상위 일 프로에 대한 혐오로 분출한다. 다시 말하지만 트럼프는 히틀러가 아니고 샌더스도 스탈린이 아니다. 그저 1930년대와 비슷한 대중의 요구를 지금은 그들이 대변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급속한 경제 자유화와 이민의 증가는 노동계급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다. 영국 지배계급은 통계 자료를 들며 “유럽연합은 좋다”고 말하지만 노동계급은 그것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이민자가 몰려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만 보인다. 미국 노동계급은 월가 금융권력에 매수된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에게 환멸을 느낀다. 트럼프나, 트럼프 돈을 받은 힐러리나, 다 똑같기 때문에 샌더스 아니면 안 된다고 믿는 이가 많다. 트럼프는 적어도 자기 돈으로 정치하기 때문에 믿을 수 있다는 이도 많다. 트럼프와 샌더스 지지자의 공통분모는 제도권에 대한 반감이다. 브렉시트 지지자들이 전문가의 경고를 무시한 것과 같다. 지배계급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상황에서 그들이 제시하는 ‘논리’와 ‘사실’은 무의미하다. 파라지와 트럼프가 망언을 계속해도 지지율이 끄떡없는 이유다.

서방세계 제도권 정당들이 이러한 심리를 헤아리지 못한다면 브렉시트는 긴 재앙의 시작이 될 것이다. 영국 국민을 멍청하다고 냉소적으로만 볼 수 없다. 그들은 금융위기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의 한계, 그리고 거대 자본에 매수된 정치권력의 비민주성을 잘 알고 있다. 브렉시트는 힐러리에게 큰 경고다.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나 위험한지 합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먹히지 않는다. 유럽연합 탈퇴가 얼마나 위험한지 누가 몰랐나? 영국인은 자신의 분노를 이민자로 돌린 선동가를 택했다. 제도권에 대한 미국인의 반감을 힐러리가 해소하지 못한다면, 트럼프가 세상에서 가장 막강한 사람이 될 수 있다. 끔찍하다. 그리 된다면 자유민주주의는 크게 퇴보할 것이고, 미국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초라하고 지저분하게 몰락하는 제국의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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