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광희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주 평창 알펜시아에서 제10회 중소기업리더스 포럼이 개최됐다. 우선 포럼이 지속적으로 개최된다는 것이 매우 의미있다. 대부분의 경우 정부나 조직의 기관장이 바뀌면 전임자가 했던 것을 파기하거나 똑같은 내용임에도 뭔가 새롭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명칭을 달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전통이 축적될 여지가 없다. 2005년 독일은 사민당의 슈뢰더 정부에서 기민당의 메르켈 정부로 정권이 바뀌었는데도 전 정권의 개혁정책은 그대로 지속적으로 추진되었고 이는 독일경제를 부활시키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메르켈 총리가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올해 포럼의 정책토론회 주제는 ‘바른 경제를 위한 금융자원의 공정한 배분’이었다. 바로 공정성 문제다. 이 자리에서 금융문제에 대한 토론회의 전문적 내용을 재방송할 생각은 없다. 그 보다는 얼마 전부터 우리사회 전반에 걸쳐 중요한 테마로 등장하고 있는 ‘공정’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공정’, ‘불평등’, ‘정의’의 문제는 21세기 들어, 특히 2008년의 뉴욕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크게 대두되고 있다. 유통 대기업의 골목상권 지배 문제, 자금 및 인력의 대기업 집중 문제, 비정규직 문제, 대중소기업간 학력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 문제, 불공정하도급 문제, 갑을관계 문제들이 본질은 불공정성, 부정의의 문제다. 공정성 내지는 정의성을 측정할 객관적 근거는 없다. 사회 통념이고, 불공정함을 당하는 측의 인내가 한계에 달하여 여기저기서 목매임의 소리가 불거져 나와 공명을 이루는 것이다.

공정성 문제가 크게 대두되는 것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신자유주의 경제논리가 사회의 전 영역을 지배하면서 소득양극화 및 계층간의 괴리가 심각해지면서 선진사회에서도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다. 마이클 샌들의 ‘정의란 무엇인가’,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과 같은 책들이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그만큼 불평등, 불균형의 문제에 세계가 예민해져 있다는 반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공정의 문제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 경제사회가 키워준 것이나 다름없는 재벌이나 거대 조직들이 많은 불공정 문제를 야기하는 리바이어던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에 사회일반의 상실감이 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압축고도성장 과정에서 정부는 인위적으로 몇몇 기업에 국민저축과 해외차관을 동원해 저리의 자금을 몰아주었고, 이들 기업의 제품이 국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을 갖도록 고환율 정책을 썼다. 고환율은 당연히 수입재의 가격을 비싸게 만들므로 그만큼 국민들의 실질소득 감소를 강요하는 것이었고, 이는 결론적으로 수출상품의 가격을 보조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경제성장의 기치는 그 어떤 사회적 가치나 정책을 함몰시켰다. 균형과 분배의 문제는 간과되었고, 성장의 과실은 시간이 갈수록 사회의 한쪽 편으로만 기울어져 갔을 뿐만 아니라 급기야는 세대간 성장사다리조차 단절시키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불공정, 불균형, 불평등의 문제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아직까지 우리 경제사회에는 성장만하면 불균형의 문제는 해소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과거의 성장제일주의 환상에 사로잡혀 성장만을 금과옥조로 여기는 경우를 종종 목도하게 된다. 세계경제가 저성장 모드로 접어들었으니 모든 것을 감내하고 다시금 허리띠를 졸라매고 성장에 매진하여야 한다는 논조들이 그것이다. 불공정, 불균형의 문제가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음에도 과거의 향수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성장과 공정의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긴 하지만 상호간의 조화를 이루면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분배의 문제를 애써 외면해온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 눈에는 뚱딴지같은 얘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공정과 균형의 노사관계를 이루는 기업의 사례, 잘 작동하고 있는 협동조합 조직 등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저성장 시대, 성장의 활로를 공정과 균형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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