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오는 9월28일부터 시행된다. 속칭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이 법은 19대 국회가 낳은 대표적 졸속 법안. 국회의원과 차관급 이상 공직자에게 적용하려던 이 법은 우여곡절 끝에 핵심 표적인 국회의원(300명)을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신, 공직 신분도 아닌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인이 포함됐다. 표적이 변경되면서 전체 법적용 대상자는 500만여 명으로 늘었고. 앞으로 공무원과 교사, 언론인은 민원인 등과 한 끼 식사를 할 때에는 일일이 법조문을 따져야 할 것 같다. ‘잠재적 범죄자’에서 벗어나려면.

김영란법은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다’라는 법언을 무색케 한다. 이법 제5조에 규정한 부정청탁의 15개 금지내용을 보면 형법 등 타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는 게 법조계의 판단. 금품수수 금지 예외사유도 모호하다. 원활한 직무수행, 사교, 의례, 부조의 목적, 장기적 지속적인 친분관계, 사회상규 등을 어떤 기준과 근거로 판단할 것인가. 수사기관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

김영란법을 현 규정대로 적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사 분야 경찰관들은 이 법이 “요술방망이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법을 빌미로 공직자의 결혼식 축의금을 조사한다거나 명절을 전후해 택배 내용을 들여다 볼 수 있다. 투서와 고발이 아니더라도 ‘의심이 갈 경우’ 얼마든지 현장 수사가 가능하다는 것. 법 적용 대상자 뿐 아니라 이들과 관계한 민간인들도 법망에서 자유롭지 않다. 수사기관엔 ‘전가의 보도’가 되는 셈이다. 농축산업과 화훼농가 종사자들이 소비위축을 우려해 ‘악법’이라는 꼬리표를 단 배경도 여기에 있고.

김영란법의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많은 국민들은 우리사회에 만연한 부패문화를 바꾸고, 청렴 문화를 정착시킬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기형적으로 변한 법 내용을 뜯어보면 할 말을 잃게 된다. 무엇이 죄가 되는지 모를 정도로 규제 대상과 범위가 모호한데다 정작 처벌 대상인 ‘몸통’이 빠졌기 때문이다.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 3년 동안 처리를 늦추다 막판에 ‘누더기 법’으로 통과시킨 19대 국회의 책임이 크다. 20대국회가 결자해지 차원에서 이 법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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