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show)

▲ 김태수

강원대병원

이비인후과 전문의

예약을 해놓고 아무런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는 것을 ‘노쇼(no show, 예약부도)’라고 한다. 최근 노쇼는 먹방(먹는 방송)의 유행 및 맛집 블로거 등을 통해 유명한 식당들이 많아지고,예약이 힘들어지자 일단 예약을 미리 해 놓았다가 예약 취소 통보도 하지 않고 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 기관이 나서 예방책을 논할 만큼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식당 말고도 본인이 근무하는 병원에도 역시 항상 노쇼가 존재하며,어떤 날은 예약 환자의 20% 가까이 노쇼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는 왔어야 했던 예약 환자가 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상태가 악화 돼 오지 못한 것은 아닌 지,걱정도 돼 환자에게 전화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노쇼가 너무 일상화되면서 오히려 노쇼 때문에 정말 필요한 환자들이 진료 예약을 하지 못해 진료를 보러 오지 못할까 봐 더 걱정이 된다.

예약했다가 정말 급한 사정이 생겨서 예약을 취소하게 되는 경우는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식당,병원,미용실,고속버스,공연장 등 5개 서비스 부분 업체를 조사해 노쇼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을 산출한 결과 직접 손실 비용은 연 4조5000억원에 달하고,연관 업체들의 손실까지 합하면 총 8조2800억원에 달하는 경제적 비용의 손해가 우리 사회에 발생한다. 고용손실은 10만8000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사회의 노쇼는 이제 단순히 급한 사정으로 용인될 만한 수준은 넘어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노쇼로 인해 손해를 보는 사업자들이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노쇼로 인한 비용을 물품이나 서비스 가격에 전가할 수밖에 없고,결국 소비자는 정상 가격보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게 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병원과 같이 꼭 병원을 방문해야 할 환자들이 노쇼를 일삼는 사람들 때문에 병원을 제때에 방문하지 못해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게 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쇼의 원인으로 노쇼가 얼마나 큰 사회·경제적 손실을 일으키는지를 인지하지 못하는 소비자의 인식 부족과 이를 용인해주는 사회 풍조를 들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노쇼를 반복하는 소비자에게 책임을 묻고 불이익을 주는 제도가 우리 사회에 확립되지 못하게 했다. 결국 사회 전반적인 소비자 의식의 부재가 노쇼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심적 부담감 및 사회 제도적 부담감을 주지 않기 때문에 발생한다. 한 번 노쇼를 하면서 ‘내가 원해서 예약했으니 노쇼도 내가 원하기만 하면 할 수도 있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갖게 하고,이러한 생각은 노쇼를 어떠한 부담감도 없이 반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노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예약을 지키는 것이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이득이 되며,예약을 지켜야 만이 내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이와 함께 제도적으로 예약 보증금 제도나 위약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방법을 병행할 수 있다. 올해부터는 국립 휴양림은 2번 예약을 부도내면 90일간 이용을 제한하는 등 이용에도 제한을 두는 강한 노쇼 예방책을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예약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것과 위약금 등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느끼는 소비자들이 많이 있을 수 있으므로 약속을 충실히 지킨 고객에게 할인 혜택이나 나중에 예약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특혜를 주는 방법도 고안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나 소비자 단체들이 사업자로부터 소비자의 권익을 지켜내는 일도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소비자 정책을 고안하고,적극적으로 캠페인 및 교육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많은 독자들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예약을 지킬 수 없는 경우에는 잠깐 시간을 내서 예약 한 곳에 전화 한 통화라도 해서 예약 취소를 알릴 수 있는 여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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