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경포해변 주말풍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넓은 여름 놀이터,경포해변에서 날밤을 샜다.한숨도 눈을 붙이지 않고 꼬박 12시간을 지샜는데도 피곤하기보다는 지난밤 드넓은 백사장에 넘쳤던 젊은 열정의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여름 피서와 ‘야행(夜行)’의 명소,경포해변은 파도도,사람도 잠들지 않는 별천지였다.1.8㎞ 백사장은 공연 무대가 되고,만남의 장소가 되고,거대한 토론·소통마당으로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2016년 7월 30일,피서 대목을 맞은 7월의 마지막 주말,대한민국 청춘은 모두 경포해변에 있었다.


밤 7시 평온한 해변 모래게 잡이

해변은 오후 6시부터 수영이 금지된다(지난달 30일부터 이달 7일까지는 밤 8시로 연장).일몰에 즈음해서는 아이와 함께 가벼운 물놀이만 즐기는 가족들이 종종 눈에 띌 뿐이다.순간,해변에 날카로운 호각이 울려 퍼진다.대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5명이 바다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훈련소 유격장의 조교를 연상케하는 빨간 모자를 쓴 안전요원은 “지금 물에 들어가시면 위험하다”고 제지했다.다시 평온을 되찾은 경포해변 바닷가에 낚싯대 3개를 꽃아놓고 앉아있는 일가족이 보인다. ‘모래게’를 잡고있다고 한다. 장창섭(74·강릉) 씨는 “경포해변에서는 7월 말~8월 중순,저녁과 밤에 모래게(일명 금게)가 많이 잡힌다”고 말했다. 그때 갑자기 두번째 낚싯대가 미동했다.장 씨가 힘차게 줄을 감자 모래게 세마리가 한꺼번에 낚싯대 끝 그물에 걸려 버둥대고 달려 올라왔다.신이 난 가족들은 “모래게로 간장 게장이나 게 튀김,게 탕을 해먹는데 껍질이 연해서 아이들이 먹기에도 부담이 없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밤 9시 공연·불꽃놀이 시끌벅적

중앙광장 쪽이 시끌벅적하다.‘강릉국제청소년예술축전’이 막을 올린 것이다.광장은 말그대로 인산인해다.백사장에도 가족단위 피서인파들이 돗자리를 깔고앉아 공연에 빠져들었다.해가 져 하늘이 완전히 먹빛으로 변하자 불꽃놀이가 시작됐다.‘펑!펑!’ 경쾌한 폭음과 함께 현란한 불꽃이 바닷가 밤하늘을 도화지 삼아 그려지자 파도 소리가 사람들의 함성에 묻혔다.곳곳에서 연인,친구들의 ‘미니 불꽃놀이’까지 가세하면서 하늘과 바다,백사장이 온통 별세계다.


밤 10시 파도소리 안주삼아 노상

백사장을 10∼20대 청춘들이 점령했다.전국에서 몰려든 청춘들이 둘러앉아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입씨름 한판을 쏟아내는데 여념이 없다.그 사이를 치킨집 아르바이트생들이 전단지를 건네면서 지나간다.사륜구동 차에 치킨을 싣고 온 김 모(28·강릉시)씨는 “오늘 저녁에 30마리를 팔았다”며 “젊은 사람들이 호주머니 걱정을 많이 한다”고 귀뜸했다.그 시간,중앙광장 쪽 화장실에서 청소를 맡은 아주머니들이 연신 “발 씻고 들어오세요”를 외친다.정 모(61·여) 씨는 “화장실 바깥쪽에 발 씻는 공간이 있음에도 굳이 세면대에서 발을 씻으려고 해 골치아프다”며 “모래 때문에 하수구나 세면대가 막히고 화장실이 금방 지저분해진다”고 불만을 토해냈다.


밤 11시 기자에게 헌팅 시도

헌팅이 시작됐다. 2명씩 조를 이룬 남자들이 여자들이 모여 있는 자리로 가 합석을 요청한다.김지원(21·여·수원시) 씨는 “경포에서 헌팅 안당하면 여자가 아니다는 말이 있다”며 “오늘만 5번 들어왔는데 맘에 드는 사람이 없었다”고 말했다.

끈질기게 합석 상대를 찾아나선 남자들은 심지어 취재를 하는 기자에게도 다가와 “합석하겠냐”고 물어보는 웃지못할 상황도 발생했다.


새벽 2시 통기타 낭만족 등장

쓰레기만 남은 빈자리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버려진 돗자리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모습도 목격됐다.

취기가 오른 남녀가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매의 눈을 가진 안전요원의 호각 소리에 황급히 빠져나오는 아찔한 장면도 발생했다. 며칠전에도 남자 한명이 새벽에 “죽겠다”고 바다에 뛰어드는 바람에 구조요원들이 긴급출동하는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사람들이 듬성듬성 빠지자 이번에는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낭만파들이 생겨났다.통기타 음률이 바닷바람에 실려 퍼지자 어느새 커다란 반원형의 즉석 어울림 공간이 만들어지고,금세 수십명이 모여들었다.정민강(31·인천)씨 일행은 멋들어진 노래를 부른 후 “경포해변은 나이,성별,금전의 벽이 허물어지고 누가와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최고의 여름 휴가지”라고 극찬했다.


새벽 4시 백사장 쓰레기 수거

사륜구동차가 해변 곳곳의 쓰레기통을 수거·정리하기 시작했다.5시가 되자 야광옷을 입은 수십명의 청소요원 50여명이 백사장에 등장했다.

이들은 1.8㎞ 경포해변을 3개 구역을 나눠 이잡듯이 쓰레기를 수거했다.유리병이 깨져 있을 만한 곳은 일일이 손으로 뒤집으면서 파편을 찾아냈다.이날 경포해변 백사장에서는 10여t의 쓰레기가 수거됐다. 그리고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지난 밤의 흔적을 완전히 지운 경포해변에 다시 해가 밝아왔다.


아침 7시 해 떴다 해장하러 가자

어느새 경포에 아침이 찾아왔다.붉은해가 동해 바다를 눈부시게 비췄다.경포해변의 하루는 이렇게 또 시작됐다.이미 해변 곳곳에 두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여유롭게 거닐고 있다.경포는 오늘도 변함없이 피서객과 청춘남여의 물결로 출렁일게다.나는 이제 해장하러 가야할 시간이다.

강릉/이서영 arachi21@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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