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광호

춘천도예 대표

얼마 전 모 티비 방송에서 방영되었던 고려 말 부터 조선 초를 다룬 역사 드라마에 태조 이성계로부터 정몽주 정도전 그리고 이방원이까지 다양한 역사적 인물이 나왔다. 1392년 4월 정몽주가 이방원(李芳遠)에게 살해되고 반대세력이 제거되자 7월 조준·남은(南誾)등과 함께 이성계를 새로운 왕으로 추대해 조선왕조를 개창한다.

역사 드라마는 어차피 시청률을 의식해 다소 각색되어 연출되긴 하지만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피비린내 나던 선죽교 위에서의 낭자했던 당시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상상해 볼 수 있다. 태조는 개국직후 17조목의 편민사목(便民事目)에 관한 태조의 교지(敎旨)를 지어 새 왕조의 국정방향을 제시했고 향리집안 출신으로 노비의 피가 섞여있던 삼봉 정도전은 민본정신을 근간으로 한 신권정치를 명분으로 왕자들의 힘을 뺏기 위해 요동정벌을 계기로 사병을 철폐하려했다. 이런 이유로 태조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이방원과 정치적인 대립각을 세운 것이 단초가 되어 정도전은 이방원을 전라도로,이방번을 동북면으로 보내려 했으나 8월 이방원 세력의 기습을 받아 살해된다.

지금 나라 안팎의 정치 군사적 상황을 보면 구한말 상황과 무엇이 다를까하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으로 어지러운 시국에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나라를 튼튼히 해야 한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무리가 없다.

필자는 만 50세 되던 해 후배 직원들을 위해 전무이사 자리를 과감히 내려놓았던 경험을 갖고 있다. 회사가 한 창 어려울 때 전무 월급이면 4명의 과장 월급을 줄 수 있다는 관리부장의 대답을 듣고 그 자리에서 사직서를 쓰고 아무 준비도 없이 회사를 나왔다. 젊은 과장들의 총총한 가족들을 생각하며 죽으려는 자세로 새로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비록 작은 중소업체였지만 연봉 1억이 넘는 전무자리를 내놓고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서울 이태원에서 무역사업을 했다. 솔직히 고백하면 이런저런 어려움도 많았지만 서울에서의 사업을 정리하고 2009년에 꿈에도 그리던 고향 춘천으로 내려왔다. 그런 사즉생의 결단 덕분에 지금까지 서울에서 보다 더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도예공방도 열고 농가주택도 사고 텃밭도 가꾸며 즐거운 귀향 생활을 하며 산다. 돌이켜 생각해도 2003년 어느 봄 날 인생 선배로서 임원으로서 선택했던 사즉생의 절박했던 선택은 매우 자랑스러운 것으로 지금껏 한 번도 후회하지 않았다.

지나간 역사를 통해 잘못된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서로 양보해 공익을 앞세우는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산다면 단합된 국민의 힘으로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도 반드시 달성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우리는 사즉생(死卽生)의 자세로 좋은 역사를 써야한다. 그런 의미로 이번 헌재에서 적법 판정을 내린 김영란법도 수정 없이 즉각 시행해야한다. 아프지 않고는 성숙해 질 수 없음을 지나간 역사에서 배워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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