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떠난 텅 빈 운동장. 그 곳은 외롭고 적막합니다. 웃음이 사라졌지요. 아이들이 보고파 교문 앞을 서성이던 할머니의 종종걸음도 볼 수 없습니다. 한 때 온 동네의 자랑거리였던 이순신 장군상은 저 홀로 늠름할 뿐, 찾는 이가 없습니다. 학교와 함께 커가던 향나무와 주목은 잡풀에 묻힌 지 오래입니다. 이따금 교정을 훑고 지나가는 빈 바람소리만 애처롭습니다. 마을의 역사가 ‘폐교’와 함께 사라진 것이지요.

‘10년이 젊어진다’는 양구. 한반도 정중앙이 가마솥처럼 끓던 날, 그 곳에서 그림자 같은 폐교를 만났습니다. 양구 시가지에서 자동차로 10여분 남짓한 거리. 폐교 한 모퉁이에 한갓지게 걸린 현수막 글귀가 눈길을 끕니다. ‘00국민학교 추석맞이 동문체육대회’. 초등학교가 사라진 곳에 ‘국민학교’가 현수막으로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사라진 곳에 어른들이 남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뿐, 곧 그들의 ‘국민학교’도 소멸될 것입니다. 젊은이가 돌아오지 않는 ‘젊은 양구’는 희망사항일 테니까요.

어디 양구뿐이겠습니까. 한 때 ‘전인교육의 상징’으로 이름을 날렸던 ‘횡성 덕고초등학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강원도 어느 시골학교와 다름이 없지요. 서울학생들로 북적거렸던 때가 불과 10여 년 전이었는데, 지금 그 학교는 추억의 공간일 뿐입니다. ‘전인교육’ 타이틀도 슬그머니 내려놓았습니다. 정선 동강변 학교가 미술관으로, 홍천 두메산골 학교가 펜션으로 운영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그런 변화에 무심합니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사라지는 데도 말이지요.

‘지방교육재정 효율화 방안’을 들어보셨는지요. 이 정책이 현실화되면 강원도에서는 40%에 가까운 학교가 문을 닫습니다. 삼척 하장면과 태백 철암동, 횡성 갑천면 등은 학교가 없는 ‘무교촌’으로 전락하지요. 영월, 횡성, 화천, 고성지역 초등학교는 현재의 20%만 남습니다. 학교가 사라지면 마을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지켜본 그대로입니다. 강원도가 그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교육정책이 이대로 진행되면 학생이 사라지고, 마을이 없어집니다. 앞으로 5년간 강원도에서 2만여 명의 학생이 줄어든다는 교육청의 발표가 섬뜩합니다. 강원도가 조금씩 사라지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과거가 지워지고 미래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강병로 논설위원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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