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지 말고 시장과 국민과 소통하라’, ‘민원인이나 업계 관계자들을 꺼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만나라’, ‘위축되지 말고,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하라’ 등.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이후 정부 각 부처 장관들이 쏟아낸 주문이다.그러나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반응은 싸늘하다.‘공무원끼리도 약속을 잡지 말라’,‘외부인과의 식사는 무조건 거절하라’, ‘저녘은 집에서 먹어라’ 등으로 대꾸한다.공직사회와 시민사회의 단절!

자기방어에 민첩한 공직사회가 빠르게 보호막을 치면서 ‘복지부동(伏地不動)’이 현실화 되고 있다.애매한 인·허가 민원의 경우 ‘되는 쪽으로’가 아닌, 은근히 ‘안되는 방향으로 몰고간다.‘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간 감사에 이어 김영란법에 걸리기 십상이란다.승진 등을 둘러싼 경쟁자의 내부고발이 두렵기도 하고.김영란법 시행과 함께 공직사회 안팎에 보이지 않는 벽이 우후죽순처럼 솟고 있다.각자 부담하는 ‘더치페이’를 강조하지만 ‘나홀로 식사’가 더 편하다며 얼버무린다.‘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책임질 일도 없다’는 공직사회의 암묵적인 지침!참 난감하다.

공직사회가 움츠러들면서 민원인들은 발만 동동구른다.공직자의 재량행위가 크게 줄어들고, 인허가절차가 엿가락처럼 늘어질 것이란 우려 때문.‘청탁을 받고 민원을 해결해줬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하자 있는 서류’는 무조건 거부하는 사례도 목격된다.법 시행 1주일만에 이런저런 상황이 발생하자 민원인들은 “김영란법이 안착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개탄한다.복지부동을 넘은 공직부동(公職不動)!

관과 민의 ‘소통 경로’ 확보가 시급하다.하위직 공직자에게 업무추진비를 지급, 부정의 싹을 잘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그러나 공직사회가 움직이지 않으면 모든 게 헛수고다.인사혁신처가 올해 개정한 ‘공무원 징계령 시행규칙’을 적극적으로 시행하자는 주장이 제기된 배경.개정안은 마땅히 해야 할 직무를 안 하거나(부작위·不作爲)근무 태만 등 ‘소극적 행정’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준 공무원을 파면·해임할 수 있도록 했다.공직사회는 김영란법보다 이 규칙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공직사회 스스로 ‘부작위 공무원’을 퇴출시켜야 한다.‘부패의 진원지’가 아님을 증명하는 길이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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