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시인이자 화가다.소양강이 어렴풋이 보이는 춘천시 서면 방동리에서 두부 집을 운영한다.본명은 ‘최양숙(62)’.지금까지 한번도 ‘시인’과 ‘화가’로 불린 적이 없다.그러나 그녀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어엿한 작가다.두부 집 벽면이 시와 그림으로 가득하다.배우지 못한 것이 늘 한스럽지만 시인은 과거에 머무르지 않는다.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인 그녀에게 과거의 이력은 큰 의미가 없다.‘열정’과 ‘긍정’이 그녀를 지탱하는 힘!

“어둠 내린 빈방에/나 홀로 침묵에 젖어/눈을 감는다//귀뚜라미 슬피 울어/내 마음 더 서글퍼지고/문틈 사이로 스며드는 찬바람//젊음이 넘치는 날도 있었건만/인생 60이 되고 보니/늦가을에 단풍들 듯/내 인생도 물들어 간다.(작가의 양해를 얻어 한글 표기법에 맞게 고침)”.그녀가 지은 ‘가을 밤’ 전문이다.나이 듦에 대한 성찰이 깊게 묻어난다.고되고 힘든 인생을 ‘단풍들 듯’이라고 표현하는 멋스러움.세월의 무게를 차분히 받아들이는 여유다.

사실, 그녀의 본업은 밥집이다.시를 짓듯 밥을 짓는다.그녀의 밥상은 따뜻하고 푸짐하다.굶주렸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찰지고 풍성한 밥상을 만들었다.그녀의 밥상에선 달콤 쌉싸래한 고들빼기가 춤을 춘다.서너 해쯤 묵었을 된장이 매운 고추를 길들이고, 들기름에 달달 볶인 질경이가 밥그릇을 비워낸다.야무지게 익은 가을 맛이다.찌그러진 냄비에 끓여낸 두부찌개의 뭉근한 맛이란….부뚜막에 올라앉아 먹는 밥맛이 그럴 것이다.

그녀의 밥집은 외지다.고려시대 명장 장절공 신숭겸 묘역으로 가다 왼편으로 꺾어들어가면 그녀의 ‘손 두부집’ 간판이 보인다.마치 솟대처럼 솟았다.천하 명당으로 꼽히는 장절공묘역이 부럽지 않다는 그녀의 집터.마당에서 바라본 풍광이 일품이다.그 집에서 최 씨는 남편 조구연 씨를 만나 아이 둘을 낳아 길렀다.한때 한량이었음을 스스로 밝힌 조 씨는 아내의 충직한 보조자.토끼와 닭을 기르고 텃밭을 가꾼다.그런 그가 추임새를 넣는다.‘내 아내는 시인이자 화가’라고.이 가을이 가기 전, 서면 ‘두부 집 갤러리’ 나들이는 어떨지.그 곳엔 우리가 미처 눈치 채지 못한 이 땅 어머니들의 눈물과 한과 웃음 소망이 오롯이 배어 있으니….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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