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성일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언젠가 유모차를 끌고 가던 아줌마가 전철역 입구 금연구역에서 흡연하는 아저씨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했다가 웬 참견이냐고 뺨을 맞았다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다.우리는 남의 일에 상관말고 자기 일이나 잘 하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다.그리고 대체로 다른 사람의 일에 참견하려고 시도하지도 않고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남의 일에 흔히 상관하게 되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가 불편하고 피해를 입게 되기 때문이다.

대중 앞에서 지나친 애정행각을 벌이고,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며,금연구역에서도 거침없이 흡연하며 꽁초를 아무데나 버리고,계곡이나 바닷가에 음식물 쓰레기를 투기하는 행위는 특정인에게 불편을 주지 않는 것 같지만 분명히 다수에게 피해를 끼치고 불쾌하게 만드는 행동이다.버스나 지하철에서 큰 소리로 휴대전화를 장시간 통화하는 것도 주위 사람들을 짜증스럽게 만든다.더구나 주변에 통화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스트레스가 가중되기도 한다.이와 같은 행동을 주변에서 개의치 않는다고 인정해주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곤란하다.내게 직접 피해가 없으면 남의 일에 간섭하기 싫어서 또는 개입했다가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냥 방임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에게 이해관계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일에 개입하면 안 되는가? 심야 귀가 길에 강도나 성폭행을 당할 순간에 개입하거나 사고나 재해와 같은 위급한 경우에 끼어드는 것을 간섭한다거나 상관한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혼자 울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를 잃었는지 물어보며 따뜻하게 대하거나 길을 모르고 헤매는 사람에게 방향을 가르쳐주는 행동을 나무라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물론 장기나 바둑을 구경하면서 훈수를 두고,타인의 외모나 복장에 대해서 비난하며,남에게 괜히 험담을 하거나 언쟁에 개입하는 것은 불필요한 일이다.그러나 대학을 졸업한 조카에게 취업이나 결혼에 관해 묻는 것도 관심의 표명이지 타인과 비교하며 자존심을 손상시키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당사자에게는 민감한 주제일 수가 있지만 가족이나 친척의 관심을 쓸데없는 참견으로 비난하거나 회피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도우며 살아야 한다.그 과정에서 이웃의 일에 관심을 갖고 조언을 하거나 돕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이웃의 일이 내 일이 되기 때문이다.주차 공간이 부족하다고 인도를 가로막거나 학교 앞에 주차하면 통행에 지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행인들이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그들의 입장도 생각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선행되어야 자신도 편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사람을 그리워하는 외로운 청년들이 늘고 있는 현실에서 남에게 무관심한 사회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 불편이나 피해를 주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는 있다.타인의 시선에 너무 구애받을 필요가 없다는 의미는 자신의 개성이나 능력을 발휘할 때 위축되지 않고,타인의 기대에 부응하려고 분수에 맞지 않게 행동하거나 위선적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 타인을 무시한다는 것과는 다르다.예절이나 공공질서 또는 도덕은 타인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배려해야 이루어질 수 있다.남이야 어찌되든 자신의 일에만 몰두한다면 이기적이고 각박한 사회가 더욱 피폐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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