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순원

소설가

사람이든 짐승이든,또 풀이든 나무든 그것이 태어나고 자라나는 환경이 중요하다.그러나 동물이든 식물이든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스스로 자기 운명을 정하지 못한 것이 바로 자기가 태어날 자리,환경에 대해서이다.나무든 풀이든 사람이든 누구나 자라기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고 싶겠지만,그거야말로 태어나는 자의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사람의 경우 태어나고 보니 벽촌의 가난한 집안일 수 있고,어느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보니 커다란 바위틈일 수 있다.태어나는 생명은 환경의 선택권이 없다.그러나 그런 바위틈에서도 비바람을 이겨내고 아름드리 소나무가 자란다.

어느 마을 제방둑에 가면 10미터 간격으로 포플러와 미루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아주 오래 전에 그 마을의 초등학생들이 식목일 행사로 심은 나무였다.그걸 심은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현직에서 물러나 퇴직을 했으니 그 나무의 나이도 쉰 살이 훨씬 넘었다.

그 제방은 애초 작은 논둑이었다.그래서 여름마다 개울이 넘쳐 어느 해인가 그곳에 제방을 쌓았다.예전엔 마을마다 제방을 쌓을 때,또 새롭게 길을 만들 때 품삯 대신 ‘사팔공 밀가루’를 주었다.그 밀가루는 미국에서 온 것이고,밀가루 포대에 태극기가 그려진 팔뚝과 별이 쉰 개나 된다는 성조기가 그려진 팔뚝이 악수하는 그림이 있었다.그리고 그 아래에 ‘이 양곡은 미국시민이 우방국 국민들에게 무상으로 원조하는 것으로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이라고 쓰여져 있었다.당시 미국 어느 법의 480조가 바로 ‘우방국가에 대한 잉여농산물의 원조에 관한 조항’이라고 했다.그래서 밀가루도 ‘480 밀가루’이고,제방 이름 역시 ‘사팔공 제방’이란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어느 해 봄부터 가을까지 어른들이 제방을 쌓고 아이들이 거기에 나무를 심었다.그 나무가 지금은 어른의 몸보다 굵어졌다.20년 전 영동지역을 휩쓸고 지나간 루사와 매미 태풍 때의 엄청난 수해에도 둑은 무너졌어도 그 나무들은 굳건했다.얼핏 생각하기엔 물가에 있는 나무들일수록 영양분을 빨아들이는 데 어려움이 없어 꾀를 부려 산에 있는 나무보다 뿌리를 얕게 뻗고 말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물가에 서 있기 때문에 오히려 산에 있는 나무들보다 더 깊고 든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자기 몸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비바람에 늘 맥없이 뿌리째 뽑혀 나오는 건 산도 물가도 아닌 길가에 심은 나무들이다.

그때 그 나무를 심은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이 나무들이 얼마나 크게 자랄까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일찍 고향을 떠났던 사람도,또 자주 고향에 들르는 사람도 매년 명절 고향을 방문할 때마다 하늘 높이 자란 나무를 보고 놀라는 것이다.자신들이 얼마나 오래도록 고향을 떠나 있었는가를.그리고 그 시절로부터 또 얼마나 멀리 시간이 흘렀는가를.

그것은 한 아이가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서 몽당연필로 글씨를 쓰다가 어른이 되어 컴퓨터로 글을 쓰고,전화라는 것을 책에서만 보다가 지금은 저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그런 시절의 변화가 있었다.그것이 한 아이가 물가에 심은 손가락 같은 나무들이 어른이 된 그의 몸보다 더 굵어지는 동안의 시간이다.그 안에 참으로 많은 도구의 변화와 문명의 변화가 있었다.그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다.물가에 선 나무일수록 뿌리를 깊게 내리고,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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