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준

속초의료원장

호흡기내과 전문의로서 환자를 진료하는 과정에서 매우 고통스러운 순간이 폐암 말기환자를 회진할 때이다.대개 숨을 헐떡거리며 산소를 공급받고 있는 환자에게 의사로서 어떤 희망적인 얘기도 해줄 수 없을 때 큰 절망감을 느낀다.그런 회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필자는 사후세계가 있고,그것이 아름다운 세계이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한다.죽음을 맞게 되는 말기 환자와 아름다운 사후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할 수 있다면…

의학적으로 거의 죽었다 기적적으로 깨어났던 사람들이 겪었던 경험을 통해 사후세계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다.이를 근사체험(near-death experience)이라고 하는데,네덜란드의 한 연구에 의하면 심폐소생술을 받은 환자의 18%가 근사체험을 경험한다.이는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긍정적인 감정,체외이탈,터널을 통과함,밝은 빛과의 교신,천상의 풍경을 관찰함,이미 세상을 떠난 가족 및 친지와의 만남 등이었다.요약하면 체외 이탈을 하면서 밝은 세계로 나아가고 과거의 인물들을 만나는 다소 환상적인 경험을 한다는 것이다. 신경생리학자들은 이를 단순한 전기생리학적 현상에 의한 착시일 뿐이라고 반론하고 있으나,실제로 이런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면 말기 환자와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며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2월에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일명 ‘웰다잉법’이 국회를 통과하였고 내년 8월부터 시행된다.주요 내용은 의사 2인이 의학적으로 소생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경우 환자의 동의하에 불필요한 연명치료(심폐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투여,인공호흡기 등)를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는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사전에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거절할 수 있고,건강한 성인도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면 미래에 있게 될지도 모를 임종과정에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다.

흔히 말기 환자의 통증과 증상을 완화하는 의료 행위를 호스피스라고 하는데 국내 호스피스병실은 약 1,100개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이는 대개의 말기환자 진료가 의료보험제도 상 수가를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한 것에서 기인한다.이번 법령의 통과를 계기로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 전환과 투자가 활성화되기를 희망한다.

강원도의 경우 어떤 일을 먼저 시행해야 할까?이에 대해서는 지자체 최초로 지난 2월에 ‘웰다잉 문화조성 조례’를 통과시킨 경기도 의회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조례를 통해 경기도는 존엄한 죽음과 웰다잉 문화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웰다잉 문화조성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노령 인구가 많은 우리 도가 참조할 만하다.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진지하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고, 앞으로 보건의료기관에서 전개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작성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인간은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이에 대해 미리 알고 결정한다면 불필요한 연명치료로 인한 본인과 가족들의 고통을 경감해 줄 수 있을 것이다.웰빙과 함께 웰다잉을 생각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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