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비 내리는 아침,시 한편 제대로 팔리지 않는 나라에서 시를 읽는다.이런 날에 음악이라도 있었으면….그러고 보니 시인 류근이 제격이겠다.故 김광석이 부른 ‘너무나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란 노래의 작사가.그의 노랫말은 아리다.“그대 보내고 멀리/가을새와 작별하듯/그대 떠나보내고/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눈물 나누나//…//이제 우리 다시는/사랑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그립던 말들도 묻어버리기/못 다한 사랑//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6년 만에 새 시집 ‘어떻게든 이별’을 펴낸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어깨에 힘 빼고 ‘류근’답게 쓴 시”라고 했다.스스로를 ‘삼류 트로트 통속 연애 시인’이라고 말하는 그는 “삼류라고 하는 건 내가 일류는 아니기 때문”이라는 부연설명을 곁들인다.시인답게 촌철살인도 아끼지 않는다.“스스로 일류라고 믿는 사람들 대부분은 아류들인데, 아류보다는 차라리 삼류가 낫다”고.그가 자신을 ‘3류 트로트시인’이라고 칭하면서 모든 게 유쾌해진다.소통하지 않으려고 하는 시대에 어떻게든 통하고 싶다고 했으니….그래서인지 ‘너무나 아픈 사랑이∼’란 노랫말이 더 절절하다.

불통과 독선으로 뭉그러진 세상에 시를 쓰는 시인이 있다는 건 적지 않은 위로다.특히 비 내리는 가을날엔.시인 목필균은 “때론 눈물나게/그리운 사람도 있으리라//비안개 산허리 끌어안고 울 때/바다가 바람 속에 잠들지 못할 때/낮은 목소리로 부르고 싶은 노래//때론 온몸이 젖도록/기다리고 싶은 사람도 있으리라”고 했고, 박인균은 “비 그치고 나면/젖은 몸 털고 일어나/익어가는 열매들처럼/나도 더욱 여물어야지”하고 다짐한다.시인들의 가을비!

시인 윤동주는 영화 ‘동주’에서 “이런 시대에 태어나 시인을 꿈꾼 것이 부끄럽다”고 한탄한다.그가 2016년의 세상을 본다면?공석진이 묘사한 ‘소박맞은 여편네처럼/잔뜩 풀이 죽은 모습’일까 아니면, ‘여름을 다 보내고/차갑게/천천히 오는’ 이해인 시인의 ‘가을비’일까?도종환 시인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동안/함께 서서 바라보던 숲에/잎들이 지고 있다’며 ‘서로 사랑하고 헤어져 그리워하며/한 세상을 살다가자’고 위로한다.서로 위로받고 위로하는 그런 세상이 그립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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