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동열

영동본사 취재국장

대관령에 단풍이 내려앉았다.10월 중순쯤만 해도 정상 부근에서만 언뜻언뜻 비치던 단풍이 어느새 산중턱까지 내려서면서 절정의 자태를 뽐내고 있다.2018년 동계올림픽에 대비한 시설 개선공사로 인해 영동고속도로 곳곳에서 지·정체 불편이 빚어지고 있지만,대관령의 현란한 추색(秋色) 덕분에 잠시 짜증을 잊는다.

그런데 단풍 잔치로 요란한 고갯길의 땅속,지하에서는 요즘 ‘장대 터널’을 뚫는 공사가 한창이다.내년 말부터 고속철도가 달리게 될 동계올림픽 핵심 교통망이다.터널은 평창군 진부면∼강릉시 성산면까지 22㎞나 이어진다.국내 산악터널 중 최장 길이를 자랑한다.지난해 12월에 관통식이 열렸으니 터널은 이미 뚫렸고,지금은 철도 궤도를 놓는 공사가 어두컴컴한 땅속에서 상당부분 진척을 보고 있을 터이다.철도가 완성되면 서울∼강릉은 최단 72분 만에 주파가 가능하다.현재 영동·태백선을 돌고돌아 5시간47분이 소요되는 서울∼강릉 철도거리가 1시간대로 좁혀지니 말그대로 ‘교통혁명’ 이다.열차가 대관령,험산준령을 지나치는데는 5분이나 걸릴까.대관령 고갯길을 조도(鳥道·새도 넘기 어려운 험한 길),잔도(棧道·벼랑에 선반 처럼 매어서 만든 길)라고 불렀던 옛사람들이 본다면 아마도 놀란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지금부터 260여년 전에 조선 8도를 답사하고 지리서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강릉·평창·정선 기행에서 “사흘을 걸었는데도 아직 하늘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또 1975년 서울∼강릉에 2차선 영동고속도로가 뚫릴 때 신문들은 “급행열차로 11시간 20분 걸리던 거리가 획기적으로 단축됐다”고 흥분했다.그 고갯길에 지난 2001년 드넓은 5차선 고속도로가 뚫려 험준한 고개를 거의 평지로 만들어 버리더니 이제는 5분 만에 대관령을 건너 뛰는 경이적 시대가 열리고 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초고속 ‘신작로’가 뚫리는 반면에 정작 대관령 고개와 사람들 사이의 심리적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속도전,디지털 시대의 상실이라고 해야 하나.이중환과 허균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감상했을 고갯길 단풍을 2016년 오늘의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나그네는 주마간산 격으로 훑으면서 지나치고 있다.더 나아가 내년 말 땅속을 질주하는 지하 철도 이용객은 대관령의 가을빛이나 ‘겨울왕국’으로 통하는 눈꽃세상의 존재 자체를 모르게 된다.구절양장 고갯길에서 곰삭아 온 역사·문화의 흥취에서도 멀어질게 분명하다.

대한민국 고갯길의 대명사로 통하는 대관령은 인류유산 강릉단오제의 출발지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한 신사임당의 사친(思親) 행적,고개를 넘나들던 백성들의 고충을 살핀 목민관의 애민(愛民) 의식 등 역사문화 스토리와 흥취가 넘치는 곳이다.그런 대관령을 땅속으로 5분만에 지나치는 것,그것은 이제껏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전대미문의 그림이다.고갯마루에서 까마득한 강릉시내와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환호하는 즐거움을 모르는,바쁘고 급한 관광객들은 앞으로 강릉에 무엇을 더 요구할까.올해 단풍이 유난히 고우니 그 고갯길의 단풍을 보지 못하는 관광객 맞이 고민이 더 커진다.지난 올림픽 때 전세계 TV 중계화면을 장식했던 브라질 리우의 ‘예수상’에 버금가도록 경포호에 거대한 보름달 이라도 띄워야 하나.정동진,깎아지른 산 언덕에 크루즈 유람선 호텔을 올린 것 같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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