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재력·물량 공세 앞세운 러시아 소치의 역습
2002년 유치전 땐 인프라 빈약
푸틴, 2006년 전폭적 지원 약속
에너지 자원으로 서유럽국 압박
로비·정보 수집·홍보 활동 월등

▲ 지난 2007년 2월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후보지인 러시아 소치에 대한 IOC 실사가 시작된 가운데 러시아 소치 라디나호텔에서 열린 프리젠테이션에서 이가야 지하루 IOC 평가위원장과 실사단(왼쪽)이 소치유치위원회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본사DB

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2005년7월 소치가 2014 동계올림픽유치에 나선다고 공식발표했다.이미 2002년 유치전에 뛰어든 경험도 있었다.그러나 강원도를 비롯한 경쟁도시들은 소치를 별다른 경쟁상대로 인식하지 않았다.무엇보다 소치의 빈약한 동계인프라가 결정적이었다.당시 평창유치위 내부에서도 “동계인프라가 전혀 갖춰지지 않았는데 올림픽이 제대로 되겠느냐”며 “사막에 꽃을 피우는 격”이라고 회의적인 시각을 보냈다.

그러나 2006년6월22일 IOC가 최종 후보도시로 평창과 함께 소치와 잘츠부르그를 선정하면서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3개 도시의 치열한 대결이 예상은 됐지만 예상보다 소치의 도전은 거셌다.방재흥 전2014평창유치위사무총장은 2014동계올림픽 후보지를 결정한 과테말라 IOC총회장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소치는 유치를 확정지으려 온 것이고 평창은 유치를 목표로 온 것이었다.유치위의 분위기부터 달랐다.푸틴은 소치 유치를 자신의 정치적 재기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 엄청난 물량공세에 나섰다.뒤에는 막강한 재력을 가진 가스프롬이 있었다.” 푸틴 대통령은 거칠 것이 없었다.소치에 120억 달러에 이르는 전폭적인 재정지원을 약속했다.IMG 등 세계 굴지의 컨설팅 업체와 계약을 맺고 홍보전에도 공격적으로 나섰다.러시아 언론들은 소치 유치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푸틴의 로비’라고 전하기도 했다.소치에는 러시아 최대 국영가스 회사인 가스프롬을 비롯, 노르트가즈 등 에너지 기업들이 대거 경기장 건설을 위해 투입됐다.이 중 러시아 국영 가스회사인 가스프롬은 3억7500만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가스프롬이 IOC 공식 스폰서가 된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가스프롬이 가지고 있는 원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은 서유럽국가에 적지않은 부담을 주었다.서유럽 각국은 송유관과 가스관을 통해 러시아의 원유와 가스를 공급받고 있다.2014유치위고위관계자는 평창의 유치실패 직후 “(러시아측이 올림픽 유치가 안되면)벨기에 같은 나라에 대해서는 가스공급을 끊을 수도 있다는 얘기들을 IOC최고위측에 했다는 말도 있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이로 인해 러시아와 불편한 관계를 원치않았던 서유럽 국가들이 소치로 돌아섰다는 지적이 나왔다.

러시아의 정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는 분석도 있었다.이들은 IOC 위원들에 대해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신상을 파악했다.푸틴도 15년간 옛 소련 정보기관 KGB에서 근무했고 90년대 말 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국장도 역임했다.2014유치위고위관계자는 “유치 과정에서 영국의 한 러시아 정보요원이 독극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며 “이런 사건들 배후에 모종의 계략이 있었다는 설이 흘러나오면서 올림픽 유치전을 놓고 말들이 많았다”고 전했다.

푸틴은 소치를 자신의 정치지평을 세계로 확대하는 계기로 활용하기도 했다.푸틴은 소치 현지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총리,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 로베르트 코차랴나 아르메니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잇달아 가지고 대내외적인 홍보에 나섰다.2006년에는 무려 50일 이상을 소치에서 머무르며 홍보효과를 극대화하기도 했다.

2007년2월.푸틴은 소치 현장에서 각국의 기자들이 보는 앞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와 직접 브리핑했다.세계 언론은 올림픽에 대한 푸틴의 열의와 의지를 눈 앞에서 확인했다.소치의 공격적인 유치전을 두고 IOC 주변에서는 돈잔치를 우려하는 시각이 곳곳에서 나오기 시작했다.방 전총장은 “과테말라 현지에서도 자금에 대한 얘기들이 많았다.푸틴이 있던 방에 IOC위원들이 줄지어 서있었다는 얘기도 흘러나왔다.그 방에서 많은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술회했다. 소치는 IOC의 경고도 무시한 채 총회장 인근에 아이스링크를 설치했다.전세기만 9대가 동원됐다.평창 등 경쟁도시들은 격렬하게 항의했지만 개의치 않았다.결국 일반공개는 제한적으로 이뤄지는 선에서 마무리됐다.그러나 IOC위원들과 외신들의 관심을 얻는데는 큰 성공을 거뒀다.프레젠테이션은 스티븐 스필버그독의 감수까지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AFP와 로이터 등 외신들은 IOC 총회가 끝난 직후 소치가 약 6000만유로(780억원)를 썼을 것이라는 분석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총회의 하이라이트는 푸틴의 영어,불어연설이었다.푸틴은 러시아어 외에 독일어 정도를 구사하는 수준이었다.그러나 푸틴은 영어와 불어,스페인어를 적절히 섞어가며 IOC위원들의 표심을 파고 들었다.방 전총장은 “푸틴은 3개국어로 프리젠테이션을 했지만 노무현대통령은 당초 비서진에서 한국어로 연설하는 것으로 결정돼 있었다”며 “그러나 국제관례 등을 들어 간신히 설득,인사말은 영어로 하는 선에서 조정됐다”고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푸틴은 조지 부시 미대통령과 만난 후 경쟁도시 대통령들보다 하루 늦게 도착했고 가장 먼저 출국했다.푸틴은 러시아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유치소식을 들었다. 송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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