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진 강원한문고전연구소장·문학박사

10월은 단풍과 함께 붉어진다.SNS는 온통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잎,향기를 뿜는 국화꽃이 점령한지 오래다.단풍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산과 계곡으로 가자는 주변의 채근도 심해진다.코끝이 싸한 아침에 철원 느치계곡으로 향했다.이 지역의 가을이 이름다운 대표적인 계곡이다.조선후기에 신철원 용화동에 은거하던 김창흡이 유람하고 ‘석천곡기(石泉谷記)’를 남긴 곳이기도 하다.오늘은 ‘석천곡기’에 등장하는 장소에서 그곳을 읊은 시를 붉은 단풍 아래서 흥얼거릴 요량이다.추수가 끝난 논둑을 가로지르니 명성산이 코앞에 다가서고 억새 뒤로 느치계곡 입구가 보인다.개울을 건너는데 군용 지프차가 걸음을 멈추게 한다.몇 년 전에도 지도와 번역문을 들고 철원을 찾았다.훈련장이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서 통제를 할 수밖에 없다는 건조한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계곡으로 들어서자 출입을 금지하는 경고문이 깜짝 놀라게 한다.

철원에 있던 김창흡은 화천 곡구정사에 머물던 1716년 가을에 북한산 청담동 와운루로 향했다.하룻밤을 머물면서 청담동 주인인 홍석보에게 시를 준다.그는 ‘와운루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즐겼는데,성으로 돌아와서도 흥취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감흥을 노래했다.와운루는 이후 창작의 공간으로 중요한 기능을 하였다.화가들은 이곳을 배경으로 몇 점 그림을 남겼고,겸재 정선도 이곳을 방문하였다.조선후기 문화사에서 청담동 와운루가 차지하는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김창흡의 발자취를 따라 수유역에서 내려 도선사 입구에 선 때는 여름이었다.하루재를 넘어 와운루에 이르니 화폭에 있던 너럭바위와 폭포는 실경이었다.이곳에서 시인묵객들이 시를 남기고 진경산수화를 남겼던 것이다.어유봉이 이 지역을 묘사한 ‘청담동부기’를 읽으며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계곡을 따라 내려가니 송시열의 시가 새겨진 바위가 기다린다.군 막사를 지날 수밖에 없었고,인적사항을 기록한 후 부대를 겨우 나올 수 있었다.

춘천부사 송광연은 공무가 끝나고 문소각에서 쉬고 있다가,울적한 마음을 풀기 위하여 길을 나섰다.송광연의 발길을 따라갔다.고탄에 들렸다가 양통고개를 넘으니 신북읍 발산리다.맥국터에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삼한골로 들어간다. 샛길로 바리케이드를 피해 10여 미터 앞으로 나가니 이번엔 철문이 굳게 잠겨 있다.철문 위와 옆으로 날카로운 철조망이 접근을 불허한다.국가 중요 시설이므로 출입은 사전에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고딕체 글씨가 경고판에 힘 있게 적혀 있다.경고판 밑의 연락처에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말한 후,출입자의 신상을 기록한 후 들어갈 수 있었다.군부대는 이후에 철수하였지만 산림청은 여전히 출입을 통제한다.송광연은 유람 후 ‘삼한동기’를 남겼다.

화천 삼일리에 은거하던 김수증은 1691년에 화악산에 오르고 ‘화악산기’를 남겼다.글을 따라 산을 올랐으나 정상에 올라갈 수 없다.군부대가 오래전부터 차지하고 출입을 엄금하고 있기 때문이다.강원도의 경우 옛 문헌에 나오는 곳을 찾으러 가면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강원도의 자연은 산수미가 뛰어난 공간일 뿐만 아니라,선인들이 문화를 창작함으로써 의미 있는 공간인 곳이 적지 않다.강원도의 중요한 유산인 것이다.평일에는 어쩔 수 없지만 휴일에는 장소를 개방하여 일반 시민들이 그 공간에서 문화를 향유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것은 어떨까.붉은 단풍으로 물든 계곡에서 맘껏 선인들과 함께 노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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