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욱현 강원도립극단 예술감독

마음이 심란할 때면 산사를 찾았다.산사에 가서 경내를 걷고 카페에서 진한 대추차 한 잔 마시며 풍경 소리 듣다 보면 어지러웠던 마음이 조금 자리를 잡았다.그런데 언제부터일까.산사를 찾듯 가끔 미술관을 찾았다.미술관 복도를 호젓하게 걷다 보면 미술관 특유의 고요함과 정숙함이 안정감을 선사해 주었다.조명 아래 고즈넉이 걸려있는 미술품 하나하나에는 작가의 오랜 고뇌와 습작과 탄생까지의 노력이 깃들어있고 그 앞에 서면 단순히 그림을 본다기보다 그 모든 것들과 ‘조우하는’ 것 같았다.(이렇게 거저 구경해도 되는 것일까) 미술관을 다녀올 땐 미술관 안 뮤지엄샵도 꼭 들렀다.마트나 생활용품 가게 가서 절대 살 수 없는,작가의 작품이 비록 무늬로 담긴 생활용품이지만 집으로 가져올 땐 ‘땡 잡은’ 느낌을 받았다.공연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예술을 만나는 행위는 결국 이면의 고뇌를 만나는 행위이고 그래서 우린 어디서 오는지는 모르나 기분 좋은 안정감과 향기를 얻었는지도 모른다.예술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한다.

일본의 저명한 연극 중에 ‘도쿄노트’란 작품이 있는데 1994년 초연한 이후 일본 내 큰 상을 수상하고 세계를 순회했다.한국에선 잘 알려진 배우이자 연극연출가로도 유명했던 故 박광정 연출이 ‘서울노트’란 작품으로 번안하여 2003년 초연을 했었고 그 뒤로 앙코르가 되었다.그 배경이 미술관이었다.미술관 내부를 배경으로 숱한 군상들이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게 이어지지 않고 파편적으로 펼쳐진다.기승전결의 기존 스토리 구성은 무시하고 CCTV로 찍힌 화면을 보듯 관객은 각 군상의 이야기를 두서없이 목도한다.이른바 일상 연극,조용한 연극이라는 신호탄을 올린 사건이었다.그런데 당시 정작 그 공연을 보는 관객으로 의아했던 건 무슨 가족 모임을,군대 가기 전 연인과의 이별을 ‘미술관’에서 하냐는 것이었다.우리나라에서 미술관은 그런 일상의 공간이 아니지 않은가?(지금도 물론!) 물어보니 그만큼 일본인들에게 미술관이란 공간이 일상의 공간이라는 답을 들었다.음,그들이 그렇단 말이야?

강원도에도 많은 미술관이 있다.그 중 박수근 미술관은 군립미술관이며 강원도뿐 아니라 전국단위를 봐도 흔치 않다.2002년 개관한 양구군립 박수근 미술관은 가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존재감 있는 미술관이다.춘천에서도 차 몰면 금방이어서 가끔 드라이브 겸 나들이를 간다.갈 때마다 감흥이 있다.건물 외벽부터 그냥 콘크리트나 붉은 벽돌 건물이 아닌 -박수근의 그림은 돌 위에 새긴 그림처럼 그 독특한 질감이 특색이다- 바로 그런 돌들로 이루어졌고 미술관의 외형도 네모 반듯이 아닌 주변 산세와 너무 어울리는 건축양식을 자랑한다.미술관 곁 언덕에 박수근 화백의 묘가 있고 미술관 한쪽에는 숙식할 수 있는 창작스튜디오가 있어 상주작가들을 선발 지원한다.정원엔 봄에는 호밀 가을에는 메밀을 심는다.춘천에도 권진규 미술관,이상원 미술관,춘천 미술관 그리고 작은 갤러리도 많이 있다.도내 여러 미술관 지도도 만들고 관광지랑 연계해서 아트테마상품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춥다.이불 속이 능사가 아니라 상념의 계절,미술관 나들이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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