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고 했던가.박근혜정권의 추락이 멈출 줄 모른다.대통령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집권당은 공중분해 직전이다.국정이 마비되고, 국민들은 탄식한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원인을 분석하자면 하룻밤을 지새워도 모자랄 판이다.썩어문드러진 환부의 뿌리가 깊고 넓다.대통령 자신이 가장 큰 원인 제공자다.최씨의 탐욕에 빌붙은 주변인들도 한 통속.무엇보다 최씨의 ‘그림자 권력’에 눌려 수족 노릇을 한 청와대 사람들이 한심스럽다.그들은 무슨 생각으로 대통령을 보좌했을까.

이번 사태에서 최 씨 못지않게 주목받는 사람들이 부속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과 정책조정·민정수석 비서관이다.모두 최 씨와 직간접적으로 얽혀있다.구속된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은 최 씨와 공모, 53개 대기업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774억원을 출연하도록 강요한 혐의다.정호성 전 비서관에겐 기밀문건 누출 혐의가 적용됐다.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직무유기와 제3자 뇌물제공 등 각종 혐의로 검찰 조사 대상이다.CJ그룹에 압력을 행사한 조원동 전 청와대 경제수석도 수사선상에 올랐다.

청와대 비서관들이 사법처리 된 예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과거 정권에서도 비일비재했다.1991년 발생한 수서비리도 그 중 하나.‘택지개발 예정 지구를 일반 주택청약 예금자들과의 형평에 맞지 않게 특정조합에 공급한 사건’으로 기록된 수서비리로 당시 장병조 청와대 비서관과 정태수 한보그룹회장,국회의원 5명 등 모두 7명이 구속됐다.이 사건으로 한보그룹은 몰락하고 노태우정권은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그러나 어떤 정권에서도 최 씨와 같은 그림자 권력이 비서진을 농락한 사례는 없었다.

‘비서(秘書)’라는 직함은 중국 후한 환제 때 처음 등장한다.당시에는 왕실의 도서와 기밀문서를 관장하는 직책이었다.오늘 날 비서에 해당하는 관직은 중서(中書),상서(尙書)라 했다.당나라 때의 직명은 ‘승지(承旨)’.우리나라에는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도승지,좌·우승지,부승지로 정착됐다.품계는 정3품.왕과 신하 및 백성의 뜻이 오가는 통로라 하여 죽관(竹官·대통)이라 부르기도 했다.왕과 백성의 말이 올곧게 소통돼야 한다는 철학이 배어있다.사심이 개입되지 말아야 할 통로가 돈과 권력에 찌들면 어찌될까.박근혜 정권에서 그 추악한 실체를 보게 된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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