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문을 다시 읽는다.“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기만 합니다”.“앞으로 사사로운 인연을 완전히 끊고 살겠습니다”.자기연민이자 신세한탄.“검찰은 어떠한 것에도 구애받지 말고 명명백백하게 진실을 밝히고 이를 토대로 엄정한 사법처리가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저는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습니다.(…)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하게 임할 각오이며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까지도 수용하겠습니다”.그런데 이 다짐조차 공허해졌다.

대통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대해 “저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한다”고 했다.그런데 돌연 검찰수사에 조건을 걸고 있다.국민들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하다.들끓는 민심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민심은 솔직하고 간결하다.‘사사로운 연을 끊겠다’는 대통령의 말에 “나라와 연을 끊으세요”라고 응수한다.검찰 수사 기피로 대통령의 담화는 ‘거짓말’로 고착됐다.검찰 조사 시기가 늦춰질수록 ‘조직적으로 증거 인멸이 이뤄질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이런 행태는 국민 기만행위’나 다름없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의 핵심은 헌법 가치 훼손.범죄 혐의도 속속 드러난다.미르·K스포츠재단 설립과 774억 원 기금 모금 과정에 박 대통령이 개입한 정황은 안종범 전 수석을 통해 밝혀졌다.그의 수첩엔 공공기관이나 포스코, KT 등 민간기업 임원에 특정인을 보내라는 대통령의 지시사항도 깨알같이 적혀있다.차은택씨가 운영하는 회사에 광고를 몰아주라는 내용과 포레카 강탈음모도 기록으로 남아있다.이런 기록들은 국정농단 사건 대부분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을 말해준다.그런데도 대통령은 대국민 약속을 뒤집고 버티기로 일관한다.

‘100만촛불집회’에 참가한 한 초등학생은 박 대통령의 담화를 패러디 하며 “대통령 된 게 자괴감 들고 괴로우면 그만두세요”라고 했다.국민들은 “이러려고 국민 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말한다.국민들 마음에서 대통령이 사라진 것이다.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된 대통령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참담하다.권위와 당당함이 사라진 대통령에게 ‘꼼수’이미지가 덕지덕지 붙는다.치졸(稚拙)하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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