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강하

강원대 HK연구교수

사람들의 옷차림이 눈에 띄게 두터워졌다.추워진 날씨 때문이다.초겨울의 급격한 온도변화는 스트레스와 생물학적 반응을 유도하는데,이를 콜드 스트레스(cold stress)라고 한다.기온이 떨어져 스트레스를 받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다.다른 동물과 식물도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그런데 이 스트레스 반응은 의외의 아름다움으로 드러나기도 한다.우리 주변의 많은 나무들은,잎사귀를 노랗고 붉게 물들여 추위에서 살아남으려고 애쓴다.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내는 노란 은행과 붉은 단풍은 콜드 스트레스를 견뎌온 한 방식인 셈이다.

천 여 년 전 가을 산길을 오르던 중국의 시인 두목(杜牧)은 “서리 맞은 잎사귀는 이월의 꽃보다 붉다(霜葉紅於二月花)”는 낭만적 시어(詩語)를 남겼다.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그가 본 붉은 잎사귀는 갑자기 닥친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한 몸부림이고,살아남기 위한 절박하고도 필사적인 생(生)의 표현이라는 것을 말이다.

추위는 겨울이 되어야만 찾아오는 게 아니다.한 사인(私人)의 스캔들에서 비롯된 한파로 온 사회가 얼어버리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대통령에게 무려 66%의 지지를 보냈던 강원도민의 실망과 분노는 크고 무겁다.하루가 지나기 무섭게 쏟아지는 의혹과 증거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암울한 그림자를 드리운다.설상가상으로,제 때에 맞춰 찾아온 찬바람은 이 계절을 더욱 춥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추위에 닥쳤을 때 단풍이 아름다워지는 것처럼,요란한 추문과 암담한 현실은 자유,민주,평화의 가치를 오히려 환하게 밝혀준다.지난 11월 12일 서울 광화문 광장,강원도를 비롯해 전국에서 모여든 백만 명의 사람들이 들었던 촛불은 ‘지금,여기’의 우리가 직면한 불안하고 암울한 현실을 이겨보려는 콜드 스트레스가 만들어낸 너울 꽃이었다.저마다 손에 들고 피워낸 초겨울 광장의 꽃은 마냥 붉지만은 않았다.사람들이 만들어낸 백 만 개의 붉은 불꽃은 밝고,따뜻하고,장엄했다.

절정의 붉은 단풍보다 아름다운 풍경은 이것뿐이 아니었다.서로를 배려하며 앞으로 나아갔던 평화로운 행진,자유롭게 저마다의 생각을 쏟아놓았던 사람들의 말,노래와 함성,재치가 돋보이는 피켓과 구호들은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어린아이로부터 청년,중년에서 노년에 이르기까지 세대를 초월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연대는 숭고했고 감동적이었다.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야 하는 순간에 절정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단풍나무 뒤로 우리의 현실이 겹쳐진다.지금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의 가치,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고,경제지표와 행복감,삶의 만족도는 곤두박질치며,더욱 지독한 추위로 떨어지고 있는 중이다.이 사건이 진행되면 될수록 사람들의 분노와 실망은 커질 것이다.그러나 희망을 버리기엔 아직 이르다.시든 잎을 다 떨군 후에 새 잎이 돋는 것처럼,가지치기를 제대로 한 후에 나무가 건강해지는 것처럼,드러난 문제와 의혹들을 깨끗이 해결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건강해질 것이다.백 만 개의 촛불이 고질적 문제들,병리적 징후들을 남김없이 태워버리는 발화점이 되길 바란다.

다시,봄이 오면,고요하게 타올랐던 백 만 개의 촛불은 생명이 되어 황폐해졌던 고목의 가지마다 푸르고 싱그러운 자유,민주,희망으로 피어날 것이다.그러길 바란다,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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