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했던 평창유치위 유치 낙관… 결과는 두번째 패배로
투표 결과 러시아 소치에 4표 뒤져
IOC, 8년 노력보다 자금력 선택
노 대통령 기업총수 특사 불구
해당 기업인들 유치전 무관심

▲ 지난 2007년 7월 평창이 2014년 동계올림픽 유치를 실패한 가운데 노무현 대통령이 과테말라시티 평창 유치위 숙소인 홀리데이인 호텔을 방문, 교민 평창 서포터즈를 위로하고 있다.

강원도, 두차례 패배에 상처
포기하지 않고 3수 도전으로



2007년7월5일 현지시간 오전 과테말라시티.2014동계올림픽개최도시를 확정하기 위한 IOC총회가 끝났다.청와대 변양균 정책실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호텔숙소에 머물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동계올림픽 유치를 보고할 참이었다.변 실장은 노무현 대통령 지시로 청와대에 정부 고위급 TF를 구성하고 단장을 맡고 있었다.정책실 소속의 국장이 물었다.“어디를 가십니까?” 변실장은 의아하게 쳐다보고는 “대통령께 평창이 됐다는 사실을 보고하려고 간다”고 대답했다.이 국장이 “(평창이 이겼다는 사실을)어디서 들으셨느냐”고 묻자 잠깐 뜸을 들이던 변 실장은 “총회 현장에서 나온 얘기”라고 얼버무렸다.그러자 해당 국장은 “조금 더 확인해보시고 보고하셔도 늦지 않다”고 만류했다.다시 확인한 결과 평창은 1차전에서 과반수를 얻지못했다.평창은 결국 결선투표에서 패배했다.변 실장측은 가슴을 쓸어내려야했다.이미 노 대통령은 발빠른 모 수석으로부터 평창이 유치됐다는 잘못된 정보를 보고받은 뒤였다.

비슷한 시각.유치위사무실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유치위관계자들은 얼굴을 뭍은 채 의자에 앉아 회의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순간 어디선가 전화를 받은 청와대행정관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어 나갔다.옆에 있던 도의 유치위관계자에게 “평창이 됐다”고 속삭였다.이 얘기를 들은 유치위관계자는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회의장에서 전해 올 낭보를 기다리고 있었다.상황끝,그러나 그 즐거운 상상은 몇 분이 더 가지 못했다.

삼성은 달랐다.삼성그룹 이사진을 비롯해 유치에 직간접적으로 관계했던 삼성측 인사들도 호텔 곳곳에서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삼성은 이건희 회장이 총회장 안에 들어가 있었다.박용성 IOC위원을 포함해 평창은 3명이 현장에 있었다.삼성은 그룹 차원에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다.현대그룹이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유치를 주도했다는점을 감안하면 이번 동계올림픽은 삼성의 저력을 보여줄 다시 없는 기회였다.그러나 1차에서 평창이 통과되지 못했다는 소식이 현장에서 전해오자 삼성측 인사들은 하나 같이 얼굴이 납빛으로 변해버렸다.2차를 어떻게 예측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답변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허탈한 패배.노 대통령은 망연자실했다고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전했다.노 대통령은 결과를 자신하지는 않았지만 결과가 좋을 것으로 기대했다.노 대통령은 당초 과테말라행을 주저했다.그러나 유치가능성이 높다는 정부기관과 유치위의 판단을 믿고 전용기에 올랐다.

당시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패배직후 “정부에서 특별사면까지 하면서 기업 총수들을 지원해 주었는데 이들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고 분을 삭이지 못했다.이 비서관의 입에서 유치전에 미온적이거나 관심이 없었다는 그룹총수 이름 서너명이 튀어나왔다.노 대통령은 평창의 패배가 확인되자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유치위 상황실이 있는 인근 호텔을 방문했다.그리고 혹시 있었을 지도 모를 총회 이후 관련행사도 모두 취소시켰다.

당시 상황에 대해 김운용 전IOC위원은 자신의 회고글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평창은 1차에서 프라하 총회의 51표보다 15표가 적은 36표가 나왔다. 2차에서는 51대 47로 소치에 졌다.우리 측은 로게,사마란치,중국,일본,미국,유럽이 소치를 지지하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결과다. IOC의 생리는 들러리 후보도시를 많이 세우길 좋아한다.로게의 말을 구실삼아 나가는 건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국민을 속이고 돈만 낭비하고 한탕 쇼만 잘한 꼴이 되어 버렸다.대통령에게도 된다고 속이고 과테말라(Guatemala)로 오게 한 꼴이 되었다.(중략)투표 얼마 전에 몇 번이나 싱가포르 IOC위원 능(Semiang NG)에게 물어 보아도 어려울 것이라고 하고 몽골의 마그반 위원도 모스크바에서 병원 치료를 받고 와서 알쏭달쏭하다고 전화를 걸어 달라 해서 걸었다.벌써 소치로 넘어간 것이다.”물론 김 전위원이 김진선 전지사나 강원도 유치위관계자들에게 극도의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한다.그러나 김 전위원이 이렇게 이죽거려도 강원도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정부와의 대립을 불사하고 강원도가 주도권을 쥐고 나선 2014 유치전의 결과는 너무 비참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치위는 패배의 원인을 소치의 물량공세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러시아 푸틴이 주도한 막강한 정보력과 자금력에 IOC가 무너졌다는 것이다.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것은 또 현실이었다.이러한 국제상황을 외면한 채 평창유치위만 결과를 낙관한 것이다.당시 유치위의 한 핵심인사는 “2010올림픽 유치전 때부터 생각하면 8년을 공을 들인 것 아니냐,우리생각으로는 이 정도 공을 들였으면 IOC위원들도 우리 편을 들어줄 것으로 알았다.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집계해보니 결과를 낙관적으로 보게된 것”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우리가 너무 순진했다”고 고백했다.

두차례의 패배는 강원도에 큰 상처를 입혔다.평창유치위는 정치권과 시민단체로부터 공금횡령으로 검찰에 고발됐다.유치위원회 후원금이 실제보다 축소됐고 세부 집행내역도 공개하지 않았다는 이유다.그러나 기업체로부터 걷은 157억원 규모의 후원금은 시민단체들이 주장하듯 기부금품이 아니라 후원금이어서 별도의 지출내역을 공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인정돼 무혐의로 종결됐다.

과테말라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전용기에서 노 전대통령이 기자들이 있는 자리로 인사차 들렀다.기자가 “평창이 세번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하자 노 대통령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또?”라고 외쳤다.

평창의 3수가 시작됐다. 송정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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