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준

속초의료원장

올해 7월부터 결핵 진료비의 본인 부담금이 면제되어,적어도 우리나라에서 결핵 환자가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는 일은 없어졌다.결핵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호흡기내과 의사로서 이 소식을 접하고 먼저 떠오른 것은 영화 ‘크로싱’이라는 탈북자를 다룬 영화의 한 장면이다.임신한 부인이 결핵에 걸리자 북한 내에서 적절한 결핵약을 구할 수 없어 중국으로 탈주하고,다시 중국내 한국 대사관의 담을 넘어 결국 남한으로 이주한 남주인공이 마침내 남한의 약국에서 임산부에게 쓸 수 있는 결핵약을 구하는 순간 오열하는 장면이다.수십번의 죽을 고비를 오직 부인의 약을 구하기 위해 넘기고 마침내 남한에 도착했는데,마치 마트에서 물건을 사듯 꿈에 그리던 결핵약을 쉽게 구하는 그 순간.그 남주인공의 머리에는 무엇이 떠올랐을까? 그런데 이제 그 약값마저 남한에서는 무료가 되었다.

북한의 결핵에 대해서는 십여년 전부터 주로 언론기관을 통해 그 심각성이 알려져 왔다.세계보건기구(WHO)의 2012년 보고에 따르면북한은 인구 10만 명당 결핵 신환자 발생률이 345명(남한 100명),유병률이 399명(남한 199명),사망률이 6명(남한 4명)으로 결핵의 고위험국가라고 할 수 있다.특히 결핵 치료약제가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이 늘면서 최근에는 다제내성 결핵(여러 가지 결핵약이 듣지 않는 심각한 결핵) 환자가 늘어나서 더욱 향후 대처가 어려운 처지에 빠지고 있다.우리와 바로 이웃한 나라의 이야기이니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북한 결핵에 대해 구호의 손길을 보내고 있는 곳은 부끄럽게도 대개 외국의 기구나 단체들이다.대표적인 것이 유진벨재단인데 미국의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이 재단은 1998년부터 북한 결핵퇴치를 위해 다방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또한 국제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 세계기금도 2010년부터 2015년까지 총 5300만 달러를 투입해 북한결핵 퇴치에 큰 도움을 주었다.국내의 경우 2015년 9월 모 국회의원이 과거 북한결핵퇴치 사업을 해오던 대한결핵협회가 북한결핵퇴치사업은 없이 후원만 요청하고 있다는 질타를 한 신문기사를 보니 현재 이루어지는 구호활동은 매우 적은 것 같다. 호흡기학계에서도 최근 들어 북한의 결핵에 대한 논의가 줄어드는 느낌이다.

북한의 대남도발 양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여러 차례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주변국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있다.심각한 것은 앞으로도 이와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북한 전문가들의 일치된 예측이다.남북 관계의 경색은 북한의 결핵 지원 사업에도 영향을 준다.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주민을 위한 결핵퇴치사업에 대한 원조도 위축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올해 8월에는 앞서 말한 유진벨재단이 북한결핵 치료를 도울 수 있도록 정부가 협력해 달라는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이 회견의 주요 내용이 북한 결핵퇴치 사업에 필요한 약품 2-3년 치 반출을 승인해달라는 것이었으니 현재의 암담한 상황을 짐작할만하다.

결핵 치료가 실제적으로 무상이 된 우리나라에서 이제 북한의 결핵을 어떻게 바라봐야할까?그래도 민족의 과업인 통일을 대비해서 인도적인 차원의 민간 지원에는 관심을 지속하면서 결핵퇴치사업을 지원하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닐까?배고픔과 결핵에 노출된 북한주민들을 떠올리며 최소한의 인도주의적 관심을 유지하자고 조심스레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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