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호

대전대 교수

한국지방자치학회 고문

6차례에 걸친 수백만 시민의 촛불시위와 국회의 압도적 표결은 대통령의 리더십 정당성을 탄핵했다.이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생명은 헌법재판소의 심판결과에 상관없이 끝났다.대통령의 임기 전 퇴진이 불가피한 현실로 다가오면서 조기 대선실시와 함께 개헌문제가 초미의 관심을 끌고 있다.문제는 개헌의 내용과 일정이다.

‘87년 헌법은 대통령 직선제와 지방선거의 복원으로 대의민주주의를 부활시켰지만 한국병의 근원인 소용돌이 집중제의 심각한 결함을 지니고 있다.호텔 밀실의 여야 8인 정치회담을 통해 양대 정당의 이해관계가 과도하게 반영된 현행 헌법질서는 ① 비대한 중앙-허약한 지방을 구조화한 과잉 중앙집권제,② 시민통제를 배제한 엘리트 지배 대의제,③ 소수권익을 무시한 승자독식 다수제를 특징으로 한다.

그러나 그동안 정치권의 개헌논의는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대통령제나 이원집정부제 또는 의원내각제로 전환하는 문제에 한정되었다.소용돌이 집중제의 폐단을 극복할 다른 근본적 분권개혁과제는 여전히 정치권과 언론의 관심권 밖에 방치되고 있다.

지난 25년 간 추진된 역대 정부의 지방분권정책은 지방선거 부활과 제주특별자치 실시 외에 정체와 퇴행을 면치 못했다.정치권은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수를 일치시켜 지역주의 정당정치와 승자독식 다수제의 폐단을 치유할 국회의원 비례대표선거제를 번번이 거부했다.‘87년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이 스스로 법안을 발의하고 다수 국민의사에 반하는 법률을 거부할 기회를 박탈했다.

새로운 헌법질서는 파괴적 지역주의와 이전투구의 대결정치를 벗어나 포용융화의 정치를 구현해야 한다.나아가 남북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고 대국민통합을 이루는 통일한국의 시대적 요청에 부응해야 한다.이를 위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개혁과 함께 지역대표형 상원 설치를 포함한 획기적 지방분권,다원화된 소수권익을 보호하는 비례주의 강화가 필요하다.무엇보다 촛불집회의 시민항거에서 확인된 직접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 열망을 제도정치에 수용하기 위해 국민발의제와 국민투표제를 도입하고 지방의 직접민주제를 확충해야 한다.

광장의 촛불집회 분노가 소용돌이 집권의 구체제를 청산하고 코리아 르네상스를 여는 시민혁명으로 승화되기 위해서는 개헌안을 국민의 손으로 만드는 참여헌정주의가 요구된다.만일 개헌의 이해당사자인 국회가 ‘87년 개헌처럼 개헌과정을 독점하면 정치인의 기득권을 제한하는 국민주권개헌은 불가능하다.이해당사자인 정치인과 정파의 편견과 방해를 제어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역할을 최소화하는 국민 주도의 개헌절차법 제정이 필요하다.

소용돌이 집권제의 병폐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을 국회와 나누는 분권형 대통령제나 의원내각제 개헌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국회 불신이 심각한 상황에서 국회에 행정권의 상당부분 또는 전부를 이관하는 원 포인트 개헌에 동의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더욱이 대통령 퇴진에 이어 숨 가쁘게 치러질 대선에 앞서 급조된 원 포인트 개헌은 땜질식 졸속개헌이 될 우려가 크다.

제10차 분권개헌은 차기 정부가 순산(順産)된 다음에 추진되어야 한다.대선은 개헌에 대한 후보들의 공약을 심판하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차기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개헌의 방침과 일정에 따라 국민의 개헌명령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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