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문순

화천군수

‘스스러운 죽지는 접고 발을 터는 처마 밑/문고리에 닿는 정이 삶을 지레 솟구는데/따라온 사연은 겹쳐 창문턱에 누웠다’

곱씹을수록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하는 이 시구는 화천이 낳은 시조작가 월하(月下) 이태극이 1966년에 발표한 시조 ‘주막(酒幕)’의 한 구절이다.이태극에게 주막은 새가 날갯죽지를 쉬게 하면서 물 묻은 발을 터는 휴식의 공간으로 해석된다.동시에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와 사연이 오가는 곳이기도 하다.

화천 북한강 주변에서는 옛 주막 터들이 많이 발견되곤 한다.화천이 통일신라시대부터 목재와 소금을 실어 나르는 길목이었다고 하니,주막이 발달했음을 쉽게 유추해볼 수 있다.화천의 주요 길목 중 예전에 주막거리로 불리던 곳도 꽤 많았다고 전해진다.당시 주막의 의미는 지금의 술집보다는 길을 지나는 사람들이 탁주 한 사발 들고 부담 없이 눈을 붙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더 가까웠을 거라 짐작된다. 내년 화천산천어축제에서는 관광객들에게 이런 ‘주막’을 마련해주고 싶다.먼 길 마다않고 찾아온 가족들,둘 만의 여행을 즐기고 있는 연인들,수능을 마친 학생들이 오랜만에 학업과 사회생활에 지친 날개를 쉬게 하면서 축제를 만끽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다.

주막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는 것은 낮이 아닌 밤이다.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옷깃을 스치며 인연을 쌓는 시간,한 낮에 못했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소통의 시간은 밤이 더 어울린다.100만 명이 넘게 찾는 화천산천어축제지만 밤은 아직 낮선 도전의 시간이다. 축제의 지향점은 결국 즐거움이다.즐거움이 있어야 살아있는 축제이며 기분 좋은 소비를 일으켜 지역경제에도 도움이 된다.진열대의 상품이 매력을 끌지 못하면 판매가 어렵다.밋밋한 내용의 드라마는 시청률 하락을 피할 수 없다.반면 즐길거리가 넘치는 주막은 밤마다 문전성시를 이루기 마련이다.화천산천어축제는 그래서 밤이 더 즐거워야 한다.

화천군은 지난 축제 당시 처음으로 산천어 야간 낚시터를 열었다.내년 축제에서도 야간 낚시터를 개장한다.지역에서 숙박을 하면 무료 낚시터 이용권도 증정할 계획이다.내년 선등거리의 ‘차 없는 거리’에서는 전에 없던 춤과 음악의 무대가 펼쳐질 것이다.수 만개의 산천어등이 빚어내는 거대한 포토존,산천어 시네마의 심야영화,컬러얼음을 사용해 밤에 더 화려한 실내얼음조각광장,야간 먹거리 투어 등 화천만의 콘텐츠도 준비 중이다.우리의 노력이 고요한 화천의 밤을 왁자지껄한 주막거리로 바꿔놓길 바란다.그 요란함 속에서 새로운 산천어축제의 가능성이 마치 이야기처럼 새록새록 피어오르기를 기대한다.이태극이 표현한 대로 올 한해 모든 근심과 걱정을 내려놓고 ‘화천 주막’에서 심신을 달래는 여유로움과 활기찬 기운으로 새해를 맞이하시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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