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평창을 PC로 부르자

 이미 한 번씩 사용된 적이 있는 말들의 집합체를 언어라 한다. 이런 점에서 언어란 일종의 동어반복인 셈이다. 그러나 동어반복임에도 어떤 언어를 듣는 순간 기분이 상쾌해지거나 황홀해질 수 있다면, 그것은 언어의 질감(質感)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 "밥 문나?" 하는 말을 들으면 대번에 친밀감을 느끼게 되고, "그라자 잉" 하는 살가운 전라도 말투엔 단번에 권유대로 따르고 싶어진다. 사투리의 매력적인 질감 때문이다.
 "기분 좋은 말을 생각해 보자"로 시작되는 황인숙 시인의 '말의 힘'이란 시에는 "파랗다. 하얗다. 깨끗하다. 싱그럽다."는 말이 한국인의 기분을 좋게 만든다 하고 있다. "비! 머릿속에 가득한 기분 좋은, 느낌표를 밟아 보자. 느낌표를 밟아 보자. 만져 보자. 핥아 보자. 깨물어 보자. 맞아 보자. 터뜨려 보자!" 언어는 기호다. 시인은 느낌표라는 기호 역시 언어이며, 이 느낌표에서도 좋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고 노래한다.
 말과 관련된 이런 이야기는 "평창(Pyeongchang)"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얼마 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때 김정남 북한 올림픽위원회 서기장이 "유럽 방문 때 만난 몇몇 IOC 위원들이 우리에게 평양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느냐고 묻더라"고 전했다. 이것은 곧 우리말에 익숙지 않은 유럽인들이 '평창'과 '평양'을 제대로 구별해내지 못하더란 얘기다.
 한 마디로 서양인들은 지금 "평창"을 낯설어 하고 있다. 이들은 모택동(毛澤東)이 아니라 마오쩌둥으로, 이소룡(李小龍)을 리샤오룽으로, 성룡(成龍)을 청룽으로 바꿔 부르게 된 어느 날 우리가 이들 말에 적지 아니 낯설어했던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낯설음을 우리말에서 느끼고 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 하나가 평창을 "평창"이라 하지 말고 영문 이니셜 "PC"로 부르자는 것이다. 이미 지난 해 1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IOC 총회에서 낸시최 유치위 홍보담당 국제위원이 부르기 어렵다는 외국 기자들의 불만에 "그냥 PC로 불러 달라"고 한 바 있다. 마침 이것이 '퍼스널 컴퓨터(Personal Computer)'의 약자와 같아 호감도가 높다는 평가다.
 작년 제1회 국제생선회박람회에서 부산시는 고심 끝에 시민 응모를 거쳐 생선회의 영문 표기를 'hoe'로 결정해 사용했다. 이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일본의 '사시미'를 의식한 대응 조치이기도 하다. 한자어 '평창' 말고 순우리말 땅이름이 있다면 그것으로 바꿔 좋을 만했지만 기왕에 'PC'가 등장했으니 밴쿠버와 잘츠부르크를 의식해 이렇게 불러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새로 만들어진 말이 얼마나 많은가. 국립국어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조어는 모두 408 개였다. 이 중 영어로 표기된 말은 월드컵을 보느라 때 아니게 '홀로 된 부인'을 가리키는 '월드컵 위도(worldcup widow)', '슛 같은 센터링'을 지칭하는 '슛터링(shoottering)', 직설적인 화법으로 구설수에 적지 않게 올랐던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화법과 관련하여 '모럴 해저드(Moral hazard ; 도덕적 해이)'를 패러디한 '오럴 해저드(Oral hazard)' 등이 있다.
 이제 부분적 영문 표기는 국어의 오염을 염려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자연스럽게 늘어나는 추세다. 하물며 국제대회를 유치하려는 마당에서랴. 자, 세계로 나아가자. '2010 평창 동계올림픽'이 아니라 'PC 2010 Olympic'을 들고 말이다.
 말이란 단순히 의사 소통의 기호나 부호가 아니라 우리들 존재의 집이요, 실재를 표현하고 형성하는 상징 체계다. 상징은 현실을 바꾸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매력적 질감을 가진 말을 앞세워 국제적 인지도가 낮은 평창 후보지의 이미지를 높여야 한다.
 "평창"보다는 "개인 컴퓨터"라. 아니, "PC"라! 인터넷,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온라인, 오프라인, 사이버 세상…. 오호라, 대한민국은 오늘날 IT 강국이 아니던가.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