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영승

도의원·행정학박사

한 겨울이지만 곧 봄이 올 겁니다.개울가 양지바른 곳에 버들가지가 피고,응달진 곳까지 온 세상 모든 곳에 빠짐없이 봄의 전령이 도착할겁니다.삼라만상이 겨울의 묵은 때를 벗어 던지고 따뜻한 봄의 향연에 젖을 것입니다.더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희망을 노래할 것입니다.더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해 새로운 꿈에 도전할 것입니다.

자연은 그러한데 우리 인간사회는 어떻습니까? 따뜻한 햇살이 구석구석 빠진데 없이 찾아오나요? 포근한 봄바람이 응달진 곳까지 불어오나요? 겨우내 추위에 떨던 산동네 김씨 할머니 집에도 희망이 싹틀까요?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혜진이와 철민이,철수는 한 번도 새 옷을 입어보지 못했고,그렇게 맛있다는 피자 한 조각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이웃 교회나 유치원에서 일해주고 남는 음식과 옷을 얻어다 손주들을 키우고 있습니다.죽기 전에 손주들에게 새 옷 한 번 사 입히려는 할머니의 작고 작은 소망이 이뤄질 수 있을까요?

동생을 먹이느라 끼니를 거르는 소녀가장 슬기는 밥이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을까요? 돈이 없어 대학진학을 포기한 영식이는 거리를 방황하지 않고 꿈을 찾을 수 있을까요?이들에게는 아마 춘래불사춘일 것입니다.자연은 따뜻한 봄바람으로 대지에 생명을 불어넣겠지만 이들에게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오히려 잔인한 계절이 될 것입니다.

정치권은 연일 표를 사겠다고 아우성치지만 우리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정책은 없습니다.목소리 크고 힘 있는 집단에 아부하는 정책은 봇물을 이루고 있으나,추위에 떠는 김씨 할머니나 배곯는 슬기,꿈 잃은 영식이를 위한 정책은 보기 힘듭니다.

자연은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지만 욕망의 늪에 빠진 인간들은 햇빛을 독식하려 합니다.요즘 정치권을 보는 김씨 할머니는 겨울이 오히려 따뜻할지 모릅니다.차라리 봄이 오지 않기를 바랄지 모릅니다.

이들에게 대지의 물기를 빨아올릴 한 가닥의 뿌리라도 남아 있을까요? 이들의 삶의 터전이 돼버린 황무지에서도 라일락이 필까요?

힘 있는 자들이 돈·명예·권력이라는 우상에 매달리며 풍요를 구가할 때,짐짓 자신들의 정책이 지고지선인양 선전하며 위선을 떨 때,김씨 할머니와 슬기와 영식이는 힘 있는 자들의 그림자 속에서 그 존재조차 잊혀질 것입니다.빈곤의 서러움을 도외시한 채 파괴될 우상에 매달린 사람들.그들은 짐작도 못할 것입니다.

여름해변을 때리는 파도가 추억이 아니라 칼날이고,가을날 귀뚜라미 소리가 낭만이 아니라 슬픔이라는 진실을,그들이 영식와 슬기가 느끼고 있는 공포를 단 한번 만이라도 생각해주길,그들이 김씨 할머니가 겪고 있는 서러움에 단 한번만이라도 동참해주길 간절히 기원합니다.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그림자에 덮이거나,다른 그림자들이 그들을 덮을 것입니다.

정책 결정권자들의 가슴에 흐르는 따뜻한 피가 이들의 황무지에 비를 내리고,정다운 눈빛이 이들의 절망을 희망으로 바꿔주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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