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벽에 막힌 꿈…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 되길”
오전 자판기 관리 아르바이트
오후엔 승무원 취업준비 매진
학업비 충당 임상시험도 참여
“강원, 기회·교육 인프라 적어”

▲ 취업준비생 이승원(29·춘천)씨가 18일 춘천의 한 대형마트에서 이어폰으로 틈틈이 영어공부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사효진

“‘노력이 보상받는 공정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18일 오전 10시30분쯤 춘천의 한 대형마트 1층.도내 4년제 대학을 졸업한 뒤 취업을 준비하는 일명 ‘취준생’인 이승원(29·춘천)씨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자판기 관리’ 아르바이트 준비를 하고 있었다.근무복으로 갈아입은 이씨는 음료수가 가득 실린 카트를 끌고 마트 1층부터 4층 곳곳을 누비며 분주히 움직였다.이씨가 이곳에서 자판기 11대를 관리하면서 받는 월급은 48만원.이 돈으로 학비와 생활비 등을 충당하고 있다.그는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후 벌써 8개월이 넘도록 오전에는 ‘자판기 관리’ 아르바이트를,오후에는 취업준비에 매진하고 있다.취업준비생인 그의 최종 목표는 ‘승무원 취업’이다.대학교 2학년 때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 이씨는 당시 비행기에서 본 남자 승무원이 인상에 깊이 남아 그때부터 승무원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됐고,본격적으로 준비를 하게 됐다.그는 어려운 형편 탓에 안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정도로 학창시절 때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했다.

아르바이트와 학업을 병행하면서도 그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대학교 4학년이던 지난해 원하는 토익성적(810점)까지 만들었다.졸업 후에는 좀더 전문적인 준비를 위해 승무원 취업학원도 알아봤지만 강원도에서는 관련 교육기관이나 학원을 찾을 수 없었다.그는 수도권으로 눈길을 돌려 승무원 학원 등록을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이마저도 한달 최소 80만원에서 최대 2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은 아르바이트 월급(48만원)으로는 도저히 감당되지 않아 포기했다.결국 그는 우여곡절 끝에 알게 된 승무원 스터디그룹에 참여하게 돼 춘천과 서울을 매주 2회씩 오가면서 모의면접,기출문제 풀이,정보공유 등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이씨는 “강원도는 기회자체가 적은 데다 교육 등의 인프라도 부족하기 때문에 도내에서만 취업을 준비하는 것은 매우 불리하다”며 “수많은 취준생들이 수도권으로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씨는 부족한 교재비와 생활비,교통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최근에는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주변의 말에 임상시험(생물학적 동등성 실험) 아르바이트에 참여하기도 했다.그는 지난 달 5일 서울 소재 대형병원에서 제약회사에서 출시할 신약의 안정성과 복제 약이 시중에 판매되는 약과 동일한 효능을 하는지를 검증하기 위한 고위험군 아르바이트를 했다.당시 중풍약에 대한 임상시험에 참가한 그는 2박3일 동안 피를 15회 이상 뽑는 강행군을 했다.2주에 걸쳐 두차례 진행한 뒤 그가 손에 쥔 돈은 50여만원.이씨는 “부족한 생활비에 교통비,인터넷 강의비까지 일부 보탤 수 있다는 말에 시작했지만 하루종일 바늘을 꽂고 피를 뽑아가는 그때만 생각하면 다시는 하고 싶진 않다”며 고개를 내저었다.이어 “형편이 어려운 취준생들은 온갖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취업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의 벽을 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취업난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막혀 각종 아르바이트에 내몰리는 강원도내 취업준비생은 이씨 뿐만이 아니다.지난해 도내 청년(15~29세) 실업률은 지난해 10.3%로 전국 평균인 9.8%를 웃돌고 있다.특히 지난해 1분기(1~3월) 도내 청년실업률은 15.5%로,같은기간 전국 평균(4.3%)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다.이 기간 강원도의 청년실업률은 전국 1위를 기록했다.앞서 지난 2015년 1분기(1~3월)에도 도내 청년실업률은 18.8%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이처럼 해마다 강원도의 실업률이 전국 평균보다 높은 것은 청년층 일자리 부족과 함께 미스매칭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이같은 상황에서 청년층의 ‘탈 강원’ 현상은 강원도 청년실업률을 더욱 높이고 있다.통계청의 ‘시도별 이동자수 현황’에 따르면 최근 4년(2012~2015년)간 강원도 청년(20~34세) 1만5044명이 지역을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연도별로는 2012년 4962명,2013년 3545명,2014년 4291명,2015년 2246명 등이다.

이씨는 “강원도에서는 공무원을 제외하고는 괜찮은 일자리를 구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며 “친구들과 대학 선후배 대부분이 수도권 기업에 취업하거나 강원도를 떠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다소 늦은 나이에 대학졸업을 한 취업준비생 이씨의 심리적 부담감은 매우 크다.가정형편도 넉넉치 못한 탓에 학창시절부터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업을 병행해온 이씨는 자신을 두고 연애,결혼,인간관계 등 모든 것을 포기한 ‘N포세대’라고 말한다.이씨는 “지금 당장은 연애나 결혼,인간관계 등 아무것도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비록 출발점은 다르지만 모든 취업준비생들이 노력한 만큼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종재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