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신춘필담] 7. 문학

흔히 문학을 두고 ‘시대를 담는 그릇’이라 표현한다.다양한 문학 작품은 독자들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눈’이 되기도,마음을 쓰다듬는 ‘치유의 활자’가 되기도 한다.도내 문학인들 역시 강원의 문학적 자양분을 뼈대로 하는 각양각색의 창작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그러나 강원문학에 드리운 위기 역시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도내 문학계의 현주소와 한발 더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들어본다.
 

▲ 신효순 시인

▲ 하창수 소설가

 

 

 

 

 

 

 

 

 

 

 

송인서적 부도·성폭력 논란 얼룩                                     블랙리스트 파문 문화계 충격

올림픽 앞두고 문화 퍼포먼스 개발                                  젊은 예술가 지원 문턱 낮춰야

문학공간 지역 이점 살려 차별화                                     체계적 작가 육성 시스템 필요



-올해 문학계의 화두는 무엇으로 잡고 싶은지.

△하창수=소문으로만 떠돌던 ‘문화계 블랙리스트’란 게 사실로 드러났고,문학인들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는 게 확인됐다.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작가들은 오히려 “제대로 창작활동을 했다”고 기꺼워한 반면,이름을 올리지 못한 작가들은 마치 군부독재시절의 어용작가가 된 것 같은 수치심을 느꼈다.이 어이없는 현실은 작가들로 하여금 ‘제대로 현실을 짚어내는’ 작품을 쓰기 위해 새롭게 각오를 다지게 만들 것 같다.20세기를 끝으로 후일담문학마저 자취를 감춘 뒤 소설은 대부분 극히 사적인 세계에 몰입해온 느낌이 든다.사회문제를 더 깊고 넓게,새롭게 파들어 간다면 떠나간 독자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을 것이다.

△신효순=올해 문학계 이마에 뜬 화두를 한 단어로 ‘회복’이라고 말하고 싶다.문단 내의 깊은 논의들은 차치하고,대외적인 굵직한 사건 중 올해 문단이 ‘회복’해야 할 두 가지는 연초에 터진 송인 서적 부도와 작년 말 다양한 폭로로 밝혀진 문단 내 성폭력 이슈다.송인 서적 부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1998년 초 IMF 영향으로 송인 서적이 부도가 나자 연이어 다른 서적 도매상 부도가 터졌다.그때와 같은 사태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무엇이든 의심하고 봐야 하는 이 난세에 가능할지 모르겠다.문단 내 성폭력은 ‘출판계 성폭력 실태 조사’ 등과 같은 움직임이 있지만 그 문제는 가해자 개인의 악행만이 아닌 문단의 구조적 문제인 것 같다.넓게는 글을 평가하고 평가받는 관계,또는 사제 간,선·후배 등으로 얽힌 관계에서 가장 약자에게 피해가 집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는 사실상 올림픽이 시작되는 해로 볼 수 있는데,문학과 올림픽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나.그리고 그 방향은.

△하창수=평창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바라지만,거듭된 유치 실패의 여파와 무리한 투자가 강원도에 가져다준 부담을 생각하면 속이 많이 쓰리다.과도한 부담을 강원도민과 현 도정 책임자들에게 떠안겨준 전임 도지사의 진심어린 사과 한 마디 듣지 못한 상황에서 이번에 불거진 ‘국정농단’의 불똥까지 겹쳐 올림픽 생각만 하면 울화부터 치민다.소설에서 만약 올림픽을 다룬다면,동계든 하계든 세계의 평화와 화합을 상징해왔던 올림픽이 개최국과 해당 시도에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는 현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신효순=지난 2014년 러시아 소치 동계올림픽 개·폐막식은 신선하고도 즐거운 충격이었다.공연 문화 강국다운 화려한 퍼포먼스들이 즐비했지만 특히 폐막식에서 문학을 소재로 한 테마가 가슴을 설레게 했다.무대 중앙에 도서관이 만들어지고 도스토옙스키,톨스토이,체호프 같은 대문호들의 사진이 등장해서는 마치 ‘잘 봐 러시아가 이런 나라야’하고 으쓱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부러움과 동시에 묘한 열등감도 들었다.한국이 저런 걸 만들 수 있을까,설사 만든다고 해도 세계인이 함께 고개를 끄덕일만한 문호들이 우리에게 있는지 질문하게 됐다.최근 2018평창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해 강릉시는 문화올림픽 격인 ‘강릉 겨울 퍼포먼스 페스티벌’을 2월에 개최한다고 한다.특히 이 페스티벌에서 음악,영상,문학,춤이 어우러지는 복합 퍼포먼스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처럼 다소 미약하더라도 문학적인 어떤 시도들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도내에서 활동하는 신진(청년) 문학가들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신진작가 발굴과 기성작가와의 교류 활성화에 대한 방안이 있다면.

△하창수=도내 문인들의 ‘정체화’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소설의 경우만 보면,우선 소설가의 수가 거의 희소의 수준이라 문제의 극복이나 개선을 모색하는 일은 그야말로 지난하다.중요한 방법이기도 하고,어쩌면 유일한 방법일지 모르는 게 작가를 키워내는 시스템(교육)이다.대학이 이 일을 적극적으로 담당해야겠지만 인문학 관련학과를 축소하는 마당에 이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듯싶다.‘상상마당춘천’이 생기면서 시작해 3년여 동안 ‘작가수업’이라는 프로그램을 맡아서 일주일에 한 번씩 문학지망생들을 지도해왔는데,100여 명 정도가 거쳐갔다.아직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수년 사이에 ‘젊은 소설가’의 탄생을 보지 않을까 기대한다.이런 강의나 프로그램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신효순=무엇보다 간절히 원하는 부분이기도 하다.현재 강원문화재단에서는 만 35세 이하의 신진예술가를 선발해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다.본인도 작년에 선정돼 시집 발간을 앞두고 있다.지원을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비슷한 연배의 문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그런데 선정되고 보니 나 혼자밖에 없었다.아쉽고 한편으로는 강원도에 이렇게 신진작가가 없는 건가 하는 절망감과 동시에 강원 문단의 미래가 걱정됐다.‘신진예술가 창작지원’처럼 지역 젊은 예술가들을 까다로운 조건 없이 적극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문화재단 등 공공 기관에서 더 풍성하게 만들어져야 하고,지속성을 가져야 한다.특히 지역 대학교 인재들을 발굴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열정만으로는 예술 하기 어려운 세대들을 토닥이고 격려할 제도들이 필요한 때다.



-강원문학의 문학적 자산,또는 에너지의 원천은.

△하창수=실제로 강원도가 배출한 문학인의 수는 도세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풍성하다.문학활동의 특성상 대부분 출향해 서울에 기반을 잡고 있지만,지금도 그 위세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이 현상의 저변을 이해하는 데 강원도의 ‘토양’을 빼놓을 수 없다.이것은 홍상수 감독의 <강원도의 힘>이란 영화에서 중요하게 거론된 바 있던 ‘청정의 힘’으로 바꾸어 얘기할 수도 있는데,토양이나 청정의 힘은 도시적 감수성을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하는 질료로 작용한다.가령,이효석과 박인환을 한국의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와 시인으로 만들어준 것 역시 이 둘이었다.

△신효순=작년 강원도 내 문학관 여러 곳을 돌아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문학관이 지어진 작가들 중,작가마다 작품 세계가 다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그들의 문학 안에는 공간으로서의 강원도가 문학 작품 속에서의 강원도로 구현되어 있다는 것이다.각각의 특징을 가진 여러 개의 ‘강원도’로 말이다.강원도의 공간과 역사,자연이 곧 강원문학의 원천이라고 생각한다.즉 강원도 그 자체가 문학의 훌륭한 소재이자 특징성이 되는 것이다.지역에서 활동하는 문인들 중 일부는 그런 공간적인 이점을 챙기지 못하고 시류에 따라 맞추려는 경향이 있다.춘천의 실레마을을 그린 김유정,평창의 산천을 무대로 쓴 이효석,강원도로 귀향해 시의 길을 걸은 이성선,또 현재 활동 중인 여러 소설가,시인 중에서도 강원도의 공간을 직·간접적으로 작품 속에 녹여 특징적인 문학 세계를 보여주는 작가들이 많다.

안영옥 okisoul@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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