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동 열 영동본부 취재부장

 대구에서 또 안타까운 참사가 발생했다.
 불과 6개월전, 숱한 인명을 앗아간 악몽의 폭우에 몸서리쳤던 수해지 주민들로서는 대구 참사를 바라보는 마음이 더욱 착잡하고 충격적이다.
 무심한 계절은 어느새 새봄의 문턱.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영동 수해지는 지금 본격적인 항구복구를 준비하는 손길로 분주하다.
 이제 더 좋고 더 튼튼한 시설물을 만든다는 목표아래 항구·개량 복구공사가 겨울잠을 깨우듯 동시다발적으로 동해안 전역을 뒤덮을 것이다.
 복구공사가 영동지역 유사이래 최대 규모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경기 활황에 거는 기대도 크다. 복구 당국들은 설계용역과 입찰, 복구 준비 등 폭주하는 일거리에 눈코 뜰 새없이 새봄을 맞고 있다.
 이 시점에서 지난 여름 악몽을 돌이켜보자. 하루 최고 870.5mm, '임오년(壬午年) 포락(浦落)'이 덮치던 그날, 도내에서는 무려 151명이 사망 또는 실종되고, 3만1천738채의 주택이 물에 잠기고 무너졌다.
 아직도 시신을 찾지못한 실종자가 있으며, 생(生)의 시계바늘이 악몽의 8월31일에 멈춰선채 눈물로 밤을 지새는 희생자 가족들도 부지기수다.
 백일을 갓 지난 아들을 둔 30대 가장은 뒤늦은 결혼식 날짜를 잡아놓고 출근길에 강릉시 구정면에서 폭우에 변을 당했다. 새신랑은 달포뒤인 지난해 10월13일 실종 장소 부근 논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이 발견된 날은 아내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하고 주변에 청첩장을 냈던 날이었다.
 10여대의 차량이 산사태로 매몰됐던 왕산면 35번 국도. 그 참극의 현장에서 남편을 잃은 새댁은 최근 유복자를 낳았다고 한다.
 수해 당일, 세살난 둘째딸 생일 미역국을 먹다말고 피신을 하다 딸 둘과 아내까지 모두 잃은 강릉시 강동면 장애인 아버지의 슬픔은 많은 사람들을 울렸다.
 최근 취재중에 주문진읍 장덕리에서 만난 80대 할머니는 "죽는 날까지 그냥 컨테이너에서 살게 해주면 안되겠냐"고 호소했다. 의지할 곳 없는 처지에 융자금 상황은 꿈도 꿀 수 없으니 그냥 컨테이너에서 여생을 보내게 해달라는 것이다.
 장덕리에는 지난 2000년 강릉 시가지까지 덮친 산불로 인해 손때묻은 정든집(교동)을 잃은뒤 산불 위험을 피해 물가에 지은 집이 이번에는 수해로 무너지는 바람에 연거푸 컨테이너 신세를 지게된 이재민도 있다.
 수백기의 분묘가 매몰·유실된 강릉공원묘원에서 만난 50대 미망인은 "남편의 시신을 찾게 해 달라고 매일 기도로 밤을 새고 있다"고 흐느꼈다.
 이들의 아픔을 가슴에 새기고 항구복구에 나서야 한다.
 그때, 다리 제방 물길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게 놓고 사후관리를 강화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자문해보자.
 강릉지역에서만 무려 1조원이 투입되는 항구·개량복구를 위해 중장비 굉음이 새봄 들녘을 덮을 것이다. 땀 한방울로 재난의 슬픔을 씻고, 삽질 한번에 이재민들의 상처를 어루만진다는 각오가 새로운 시점이다.
 지금 전국을 애도의 물결로 덮고있는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는 항구복구를 앞두고 있는 수해지에도 많은 것을 생각게한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최악의 자연재해니까, 방화니까, 불가항력적 참사였다고 할 것인가. 마스콘 키를 뽑아들고 전동차에서 뛰쳐나온 기관사 처럼 방재의 키를 잘못 뽑아드는 우를 범하는 일은 없는지, 책임의식을 한층 다져야 한다.
 너나없이 고해성사(告解聖事)를 하듯 항구복구 첫삽을 뜨자.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