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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본분론

노화남 논설위원

2003년 03월 03일 월요일
 공자가 조국 노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간 것은 그의 나이 35세 때였다. 노나라에 정변이 일어나 군주가 망명하고 정치 질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자가 찾아간 제나라 역시 속으로 곪아가고 있었다. 군주인 경공은 정사를 제쳐놓고 총애하는 애첩들과 희희낙락하느라 후계자도 정하지 않았고 그 사이 실력자인 진씨 가문이 호시탐탐 군주의 자리를 엿보는 상황이었다. 조정의 신하들은 정신 나간 군주와 실력자 사이에서 갈팡질팡했고 사회 윤리는 뒤죽박죽, 죄없는 백성들만 무거운 세금내고 부역하며 고통받고 있었다.
 위기를 느낀 경공이 어느날 공자를 찾아와 물었다. 어떻게 하면 기울어져가는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겠느냐고. 공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임금은 임금노릇을 하고 신하는 신하노릇 하며 아비가 아비노릇 하고 자식이 자식노릇을 하면 됩니다.(君君 臣臣 父父 子子)" 여덟 자 밖에 안되는 짧은 말이지만 그 말 속에서 공자가 강조한 것은 직분과 책임 정치와 사회의 윤리였다. 경공은 그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다."맞습니다. 군신과 부자가 각기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나라 재정이 넉넉한들 태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경공은 공자의 말을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말은 쉬운데 이미 무너진 사회 정치 윤리를 바로 세운다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공은 마침내 진씨에게 국권을 내주는 불행을 맞았다.
 논어 안연편에 나온 공자의 이 직분론은 같은 편에서 강조한 신의론과 맥을 같이한다. 바로 유명한 자공과 공자와의 문답이다. 국정의 요체가 경제 국방 그리고 국민의 정부에 대한 신뢰인데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위정자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라고 공자는 잘라 말했다. 국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어디서 나오는가. 임금이 임금의 본분을 다하고 신하가 신하의 본분을 다해 올바른 정치가 펼쳐질 때 백성은 정부를 믿고 편안하게 생업에 종사한다. 위정자들이 제 본분을 다하지 못하면 정치 행정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백성들은 믿고 기댈 곳이 없어진다. 법가 상앙은 진나라 개혁법을 제정하고 공포하기 전에 조정에 대한 백성의 신뢰를 먼저 구축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는 남문 거리에 나무막대를 세우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놓는 자에게 십금을 주겠다"는 방을 써붙였다. 아무도 그 방을 믿고 나무를 옮기려는 사람이 없자 이번엔 오십금을 주겠다고 써붙였더니 누군가가 나무를 옮겼다. 상앙은 약속대로 오십금을 주고 법을 공포했는데 백성들이 조정의 정책을 믿고 법을 따랐다. 유명한 이목지신(移木之信)의 고사다.
 대구 지하철 참사가 터지자 국민들은 놀라고 슬퍼했다. 그런데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수습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지금 국민들이 느끼는 것은 분노이고 허탈이며 절망이다. 수백명을 태운 전동차가 불길에 휩싸였을 때 지하철을 운영하는 사람들 중 누구도 제 본분을 다해 희생을 최소화 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수백명이 불길 속에서 죽었는데도 내탓이라고 애통해하며 책임을 지기는커녕 교묘하게 감추고 덮으면서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려 애쓰는 꼴만 보이기 때문이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어느 한구석 믿을 곳 없는 우리사회 우리나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일 뿐이다.
 거짓말에 이골이 난 정치인들과 둘러대기에 능숙한 관료들이 불신사회의 꼭대기 층에서 국민을 우롱하고 중간층에서는 관료집단 기업집단 구성원들이 소비자들을 골탕먹이며 아래층 서민들은 서민들끼리 속이고 속는 세상이라 직업윤리는 고사하고 윤상(倫常)마저 흔들린다. 각계각층 구석구석에서 본분을 망각한 사람들이 제 할 일을 제쳐놓고 엉뚱한 욕심을 내다가 잘못되면 책임을 전가할 궁리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상 살기가 점점 두려워진다.

노화남 논설위원 angler@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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