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만에 무너진 코리안드림 “틀림 아닌 다름 인정해야”
24살 결혼 강원도 정착 9년째
정신질환 남편에 가장 노릇
서툰 한국어탓 가족과도 냉랭
아이 위해 2013년 국적 취득

▲ 당당하고 떳떳한 엄마로 아들과 함께 행복한 한국생활을 꿈꾸는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잔티홍(가명)씨가 아이와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사효진
▲ 당당하고 떳떳한 엄마로 아들과 함께 행복한 한국생활을 꿈꾸는 베트남 결혼이주여성 잔티홍(가명)씨가 아이와 함께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다. 사효진

“한국 엄마들처럼 해주고 싶어”
도내 거주 결혼이민자 6571명
문화적 차이 이방인 전락 우려


“잘 살고 싶어서 한국에 왔는데 이제는 이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어요.제게 남은 건 아이 뿐입니다.”
잔티홍(가명)씨는 강원도에서 벌써 아홉번 째 겨울을 맞는다.티홍씨는 지난 2008년 여름 홍천의 한 마을로 시집 온 베트남 며느리다.남편은 티홍씨보다 16살이나 많다.한류 드라마 열성 팬으로 어린 시절부터 한국을 동경하게 된 24살의 베트남 처녀는 한국이 마냥 좋아서 한국 남성과의 결혼을 결심했다.어려운 가정 형편도 그의 마음 속에 한국에 대한 꿈을 갖게 했다.6남매 중 다섯째인 그는 중학교 졸업 후 가족 생계유지를 위해 새우공장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고되게 살았다.그러던 중 국제결혼 중개업소가 오작교가 돼 티홍씨는 호치민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당시 남편은 농사일을 한다고 했다.베트남 처녀는 한국에서 온 30대 초반의 농촌 총각이 한 눈에 들어왔고 이들은 곧바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그러나 어린 신부의 소박한 꿈은 한국에 온지 이틀만에 산산조각 났다.남편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이었다.티홍씨는 지난 3년 간 남편이 방에 들어올까봐 무서워 다른 방에서 생활했다.밤에 잘 때는 방 문을 걸어잠그고 아이를 꼭 껴안고 자며 동이 트기만을 기다렸다.그래서 늘 선잠을 자다 공장으로 출근하기 일쑤였다.지난 22일 홍천에서 만난 티홍씨는 당시의 공포가 떠올랐는지 “그때 생각만 하면 너무 무섭다”며 “아이가 있으면 남편의 증세가 나아질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남편이)최근 병원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일 밤이 무서웠고 방 문이 잘 걸렸는지 확인해도 마음은 항상 불안했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어머니를 모시고 남편,시동생과 함께 홍천에서 신접살림을 차린 그는 타국에서 맞는 둘째날 밤,잠을 자다 괴상한 비명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방 안 불을 켜자 남편은 쉴새없이 소리를 지르고 웃고 또 웃는 등 이상한 행동을 반복했다.심지어 어느 날 밤에는 사라지기까지 했다.이로 인해 남편은 가장 역할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티홍씨가 홍천에 온 후 여러 공장을 다니며 생활비를 벌었다.그는 “베트남에서 만났을 때 (남편이)그런 병을 앓고 있는지 못들었고 정말 몰랐다”며 눈물을 훔쳤다.

반복되는 남편의 정신질환 증세,한국어가 서툰 탓에 시댁 식구들과의 어색한 관계와 그 속에서 오가는 말들은 그를 더욱 초라하고 힘들게 했다.티홍씨는 “도망가고 싶었고 아침에 깨어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나즈막하게 말하며 품에 안겨있던 7세 아들의 두 귀를 손으로 막았다.그는 “모멸감을 느낀 말도 들으면서 속으로 많은 눈물을 흘렸다”면서 “4년 전에는 경찰이 한밤 중에 집에 온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남편이 당시 세살배기 아들에게 손찌검을 해 아동학대 사건으로 경찰이 출동했다고 티홍씨는 밝혔다.그는 “당시 그 상황을 말리는 과정에서 나도...”라고 말 끝을 흐리며 “아이와 함께 둘이서만 살고 싶은데 공장에 나가서 버는 돈만으로는 방 한 칸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남편이 병원에 간 후 티홍씨는 현재 시어머니,시동생,아들과 함께 살고 있다.집에서는 사실상 투명인간이다.그는 “식구들에게 존중받고 싶다”며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할 곳도,사람도 없어 답답하다”며 한숨을 쉬었다.

밑바닥 까지 간 결혼생활을 수년 간 경험한 후 베트남으로 돌아가고도 싶었다.결혼 후 4년만에 친정에 처음 다녀온 뒤에 다시 5년이 흐른 지난해 11월 잠깐 다녀왔다.티홍씨는 “부모님께는 한국에서의 결혼생활을 자세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았고 참고 잘 견디면서 살고 있는 줄 아신다”며 “지금 생활을 벗어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한국에서의 삶까지 끝낼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바로 유일한 버팀목인 아이 때문이다.그래서 티홍씨는 당당하고 떳떳한 엄마가 되기 위해 지난 2013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그는 “아이가 베트남보다 교육 여건이 좋은 한국에서 학교를 다니며 여기서 잘 살았으면 좋겠다”며 “한국어 발음과 쓰기 연습을 더욱 열심히 해서 아이에게 많이 가르쳐 주고 싶고 한국 엄마들이 아이에게 해주는 것처럼 모든 것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티홍씨는 지갑에 든 주민등록증을 꺼내 보이며 “저도 한국인이예요”라고 말하며 옅은 웃음을 지었다.그러나 그는 곧 풀이 죽은 목소리로 “내가 말을 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고 무시하는 것 같다”며 “나를 비롯한 다문화 가정 여성들이 모두 느낀다.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해주고 존중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원도에 거주하는 티홍씨 같은 결혼이민자(혼인귀화자)는 지난해 11월 기준으로 총 6571명(여자 6068명·남자 503명)이다.이들 대부분이 경제문제,시댁문제,대화단절.문화적 차이 등으로 갈등을 겪으며 또 다른 이방인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전국 27만 8000여 다문화 가족 중 1만 7849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5년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복수응답)’에 따르면 이들이 꼽은 한국 생활의 어려움으로는 ‘언어문제(34%)’,‘외로움(33.6%)’,‘경제적 어려움(33.3%)’이 가장 많았다.
이어 ‘자녀양육 및 교육(23.2%)’,‘편견과 차별(16.1%)’,‘가족 간 갈등(11.2%)’등의 순이었다. 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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