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시론
이희경 춘천지법 기획공보판사

▲ 이희경 춘천지법 기획공보판사
▲ 이희경 춘천지법 기획공보판사
“판사님도 나중에 애 낳아 키워보세요.”
아직 자녀가 없는 필자에게 직장맘인 동료판사가 준 핀잔이었다.
타지에서 지역 근무를 하는 까닭에 주말 부부를 하면서,이제 막 돌이 지난 어린 자녀를 친정 또는 시부모님,도우미 아주머니에게 맡겨 놓고 발을 동동 구르던 그녀.그러한 그녀에게 미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말을 불쑥 했던 까닭이었다.그러나 사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인터넷 육아 관련 카페만 찾아봐도 금방 알 수 있다.‘○○ 지역 도우미 아주머니 어떻게 구하셨나요?’,‘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어야 할까 봐요.’하는 제목의 글에 수십 개씩 댓글이 달리고,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데에서 오는 고민과 고통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낯선 것이 아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양육의 책임이 주로 여성에게 부담되는 구조이다.대가족 시대에는 조부모 또는 이웃의 공동 육아가 어느 정도 가능했던 반면 요즘에는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비율이 높아졌고,아이는 점점 돌봐줄 사람이 없다.‘그럼 아빠든 엄마든 누구하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만 키우면 되지 않는가?’하는 반박은 현실에 맞지 않다.높은 주거비용,육아·교육비용을 마련하기 위해,대출금을 갚기 위해서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일과 육아를 병행함으로써 오는 과로와 스트레스에 직장맘들은 자녀에게 행복한 엄마가 되어 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일,육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시달린다.재작년 한 여성판사가 업무와 육아로 인한 과로로 쓰러져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우리 모두 충격이 컸고 매우 슬펐다.그러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아빠들의 삶을 다룬 모 방송사의 다큐멘터리에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스웨덴의 한 기업에서 상사가 남성 근로자들을 상대로 회사의 일이 늘어났으므로 내일부터 야근을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그러나 반응은 참담했다.어린 자녀를 둔 근로자들 대부분은 이직을 감수하고서도 그 제안을 거절했다.심지어 한 근로자는 “야근을 하게 되면 내 어린 자녀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그럼 당신(상사)이 돌봐주어야 한다”고 위트있게 받아치기까지 한다.스웨덴 역시 과거에는 남성이 늦게까지 일을 하고 육아를 담당하지 않았다.그러나 점차 남성 역시 육아를 공동으로 해야 하고 그래야 아이들이 지켜진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일·가정 양립,부모의 공동 육아를 위해 사회와 기업의 여러 정책적,환경적 지원이 뒷받침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2016년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2명 정도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라 한다.그리고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으로 ‘양육 부담’을 들고 있는 통계조사는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정부와 사회 여러 곳에서 임신 출산 비용 지원 등 저출산 문제 해결에 고심하고 있다.법원 역시 일·가정 양립을 위한 여러 가지 정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무엇보다 가장 절실한 건 엄마와 아빠가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매일 야근을 해서 아이 얼굴을 못 본다”는 말을 하며 직장에만 매달리는 모습이 미덕이 되어서는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좋은 엄마는 없다.
어떤 이는 삶이란 알파벳 ‘B’와 ‘D’의 중간인 ‘C’라고 비유했다.즉 삶은 Birth(탄생)과 Death(죽음) 사이의 끊임없는 Choice(선택)라는 것이다.어쩌면 직장맘들에게 삶이란 B(Baby,육아)와 D(Duty,업무) 사이의 C(Crying,울부짖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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