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는 얼어붙고,지갑은 닫히고…’.세밑 풍경을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소비심리가 꽁공 얼어붙었다.기업은 어떻게든 닫힌 지갑을 열어보려 하지만 소비자들은 냉정하다.아니,빈지갑을 들키고 싶지 않을 것이다.자존심이 긁히는 수모만큼은 피하고 싶은 심정.한국은행이 밝힌 1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93.3으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덮친 2009년 3월(75)이후 최저치다.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10월부터 3개월 연속 내리막길.
설 연휴가 끝나기도 전에 유통업체들은 ‘반값 세일’에 나섰다.‘소비절벽’을 피부로 접한 유통업체들이 ‘떨이 세일’에 돌입한 것이다.예전 같으면 불티나게 팔렸을 한우세트와 굴비 등 고가 선물은 애물단지 신세.블랙 쇼핑 주간을 정해 절반가격에 내 놓아도 고객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2000년 이후 최악이라고 말하는 유통업체들은 “설을 앞두고 할인행사를 할 줄은 몰랐다”며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한다.대목은 실종되고 ‘마이너스(-) 설’이 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진단.
경제계는 소비절벽의 원인으로 경기 불황과 정국 혼란,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꼽는다.세 가지 원인이 서로 물리며 설 대목을 옥죈다는 것.여기에 트럼프 발 보호무역주의와 사드배치에 따른 중국의 심술이 더해졌다.실제로 중국의 음력설인 ‘춘제’연휴기간에 한국을 찾는 유커들이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 줄어들 것이란 보도가 잇따른다.한국,대만으로 와야 할 유커들이 싱가폴 등 동남아시아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호텔과 면세점,식당 등은 이미 도미노 충격에 빠진 상황.
이번 설을 앞두고 일부에서는 “대한민국이 30~40년 전으로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지갑이 얇아지고 미래가 불투명해지면서 선물의 양태가 과거 70~80년대 수준으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경제학자들은 양말 등 생필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근거로 든다.실제로 A 유통업체가 분석한 결과,양말 등 1만~3만원대 선물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두 배 이상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김영란법’의 영향이라지만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흥청망청까지는 아니더라도 마음만큼은 넉넉한 ‘설’이어야 하건만, 나라꼴이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최악의 설!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