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일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 김성일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 김성일 강릉원주대 명예교수
수도권에 전 국민의 절반이 몰려 생활하고 있다.대학과 기업이 집중되어 있으니 시골에서 상경한 많은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 자연스럽게 수도권에 정착을 하게 되어 인구 편중 현상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따라서 명절에 고향을 방문하는 시기가 도래하면 거의 전 국민이 움직이는 귀성 또는 귀경 전쟁이 벌어진다.명절이 아니면 부모와 형제,친척들을 만나볼 기회가 드물고 고향의 정취도 느껴볼 새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가족이 모이면 번잡한 가운데 여러 가지 문제도 발생한다.그 대표적인 것이 명절 스트레스이다.비록 1년에 두 번이라 해도 대가족이 모이는 명절에는 기혼 여성들에게 음식 준비와 친척들 대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어 그 시기가 되면 몸과 마음이 편치 않는 명절증후군을 겪게 된다.기혼 여성들은 명절 때가 되면 매번 시댁만 우선 하지 말고 친정에도 먼저 가자고 요구하고,시댁에 가지 않으려고 휴일 근무를 자청하거나 가사노동을 다소나마 줄이기 위해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가짜 깁스’나 ‘가짜 코피’를 구입하여 몸이 불편한 척 위장도 한다.
남성들도 여성 못지않게 스트레스를 호소한다.시댁에 가기 싫어하는 아내와 며느리 음식 솜씨를 못마땅해 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눈치를 보고,동서간 직업이나 수입을 비교하는 장모 앞에서 자존심 손상을 입기도 한다.게다가 귀성과 귀경 전쟁의 와중에 정체된 고속도로에서 장시간 운전에 지쳐 사소한 언쟁에도 분노가 폭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가족간 화목을 도모하고 친척간 유대관계도 돈독히 할 수 있는 명절 기간에 심신의 스트레스 때문에 오히려 갈등이 증가되어 그 후유증으로 명절 직후에 갈라서는 ‘명절 이혼’ 부부가 늘어나고 있다.통계청의 지난 5년간 자료에 의하면,설이 지난 2~3월과 추석이 지난 10~11월에 이혼율이 직전 달에 비해 평균 11%가 증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같은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 긴 연휴기간에 가족 간 유대를 강화하기 위하여 차례를 간단히 지낸 후 가족여행을 떠나거나 휴일을 즐기는 경우도 늘고 있다.그러나 고향이나 먼 곳에 노부모만 거주하고 있다면 명절만이라도 찾아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외로움을 위로해 드려야 당연한 도리일 것이다.특히 질병이나 생활고에 시달리는 노부부는 명절에 자녀들이 찾아오지 않을 때는 소외감과 허탈감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지금 젊은 부부들도 불원간 노인이 된다.나중에 애지중지 키운 자녀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찾아오지 않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제사문화로 명절을 시댁에서 보내는 풍습이 지속되는 한 시댁을 우선적으로 찾아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내 친정도 올케에게는 가기 싫은 시댁이다.
어느 오지 마을에서는 명절에 고생하는 며느리들의 시댁 방문을 환영하기 위하여 마을 노인회에서 시아버지가 설거지는 다 해준다는 현수막까지 내걸기도 한다.실제로 명절에 고생하는 여성들의 부담을 덜기 위해 손이 많이 가는 전을 부치거나 다른 일을 거드는 남성들도 늘고 있고 차례나 제사도 간소화되고 있다.어머니와 아내가 며칠 동안 힘들게 일하는데 남자라고 마시고 놀기만 한다면 너무 불공평한 일이다.내 딸이 나중에 며느리가 되어 시댁에 가서 힘겹게 일만 하다가 돌아와 며칠간 자리에 누워야 한다면 무척 속이 상할 것이다.내 며느리도 누군가의 딸이다.가족 간 숨겨온 감정의 앙금이 명절에 드러나 파국을 맞기 전에 평소에 속내를 털어놓고 서로의 입장과 의견을 교환하며 이해와 협조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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