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장진 수필가

▲ 황장진 수필가
▲ 황장진 수필가
그믐달이 침침해서 가로등,보안등이 눈 부릅뜨고 있는 어둑새벽이다.온천지가 밀가루를 하얗게 뒤집어쓰고 있다.하늘에서 축복이 내린 것이다.도둑눈이다.농민들이 덩실덩실 춤을 출 일이다.운동복 차림으로 서둔다.숫눈을 치우는 재미를 보려고 세수도 미룬다.앞마당이나 길가에 발자국 하나 없이 깨끗하다.다행이다.화단의 감나무는 눈꽃을 피우고 나 보란 듯 의젓하게 내려다본다.
지 씨네와 정 씨 댁 앞길은 벌써 새까맣다.부지런한 정씨가 벌써 나와 눈을 친 것이리라.서녘 경삿길은 쭉쭉 밀고 나가기 쉽다.길가에다 밀어붙이니 어렵진 않다.길 가운데는 염화칼슘을 뿌렸는지 벌써 치적 거리고 있다.사람 다니는 양 갓 쪽부터 밀어 나간다. 주차장은 차위의 눈을 쓸어내리고 안쪽에서부터 밀어 들머리 귀퉁이에다 모아 쌓는다.밀가루가 이만치 쏟아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계단의 눈은 차지게 쌓였다.빗자루 등으로 서너 번 밀고 쓸어내린다.북녘 길은 차들이 세워져 있어 한쪽만 밀어 담벼락에 붙인다.
“아니,혼자서 동네 눈 다 치우렵니까?” “아녀요,제 차가 저기 세워져 있어 나오는 길 쓰는 겁니다.”늘 자기 집 들어가는 길바닥 청소는 물론,눈도 뉘보다 먼저 치우는 정 씨다.날마다 이분 때문에 나도 늦잠을 잘 수가 없다.
1주일 전 대관령 굴길 7개를 빠져나올 때였다.삽시간에 펑펑 휘날리는 가루눈이 한 뼘 이상 두껍게 쌓이는 바람에 앞뒤 차들이 모두 멈춰 서고 말았다. ‘에라! 엎어진 김에 푹 쉬어가자.올핸 눈다운 눈도 내리지 않아 눈경치도 보지 않았잖은가?’
그보다 농민들 가뭄 걱정 들게 되어 천만다행이다.첫 굴에 다다르지도 못하고 2시간 30분이나 영동고속도로 위에서 쉬었다.온 산천의 나무와 바위들이 새하얀 옷을 두껍게 입고 뽐냈다.그 모습을 한껏 즐겨야 했다.눈송이들의 갖가지 춤사위도 실컷 즐겼다.
눈은 건강에도 좋다고 한다.미국 온라인매체 리틀띵스가 소개한 것이다. ‘눈길을 걷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자연스럽게 운동을 할 기회가 된다.눈 내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재밌다.봄에 정원을 가꾸기 쉽게 해 준다.아픈 기를 누그러뜨린다.에너지를 북돋워 준다.’ 그럴듯하다.그래,옥상의 눈은 치우지 말자.손자 손녀들이 눈 놀이 즐기게 그대로 놔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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