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세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속초시협의회장
▲ 장세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속초시협의회장
국내 입국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를 맞았다.통일부는 최근 3만명 시대를 맞아 지원정책을 사회통합형으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기존의 북한이탈주민 지원정책은 개인적 차원의 자립과 자활,고용과 경제동향지표 제고에 강조점을 두고 있으나 향후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공유,기존구성원들과의 원활한 통합과 동등한 역량을 갖추는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통일부의 정책기조가 성공하려면 정책 환경의 변화는 물론이고 북한이탈주민과 지역사회주민 관계 전문가들의 협조와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북한이탈주민은 한국사회의 새로운 이주민이며 통일시대 선 경험을 제공해주는 ‘미리 온 통일’로 불리고 있다.
이들은 우리민족의 구성원이지만 이질적인 체제를 경험한 후 한국에 입국했기 때문에 해외에서 들어온 결혼이주민 외국인 노동자와 유사점과 차이점을 함께 갖고 있다.따라서 북한이탈주민의 사회 적응과 통합 및 지원에 대해서는 다문화적 관점과 이주민 관점,그리고 소수자와 통일 대비 인력 등 다양한 관점과 성격이 논의 돼야한다고 본다.왜냐하면 한국사회는 2016년 11월 현재 북한이탈주민 3만명 시대를 맞았으며 멀지 않은 장래에 향후 5만명 시대도 맞이하게 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현재와 같은 남북 분단시대가 장기간 지속된다면 북한이탈주민의 규모는 10만명,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의 규모증대는 단순한 양적 확대만이 아니라 탈북동기와 탈북의 성격 변화,그리고 정부의 정책변화도 함께 가져왔다.1948년 남북이 분단된 이후 북한이탈주민은 지속적으로 발생해왔다.1950년에서 53년까지 6.25전쟁 기간 남하한 실향민은 이산가족으로 불리고 있을 뿐 북한이탈주민 통계에 포함하지 않아 남북한이 치열하게 체제 경쟁을 벌이던 1990년 이전시기 입국자는 600여명 수준이었다.
당시 이들은 대부분 군사분계선에 근무하던 군인신분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공식 명칭은 ‘월남귀순용사’였다.
당시 현재와 같은 체계적인 사회적응 훈련은 없었지만 정착금과 각종 지원혜택이 높았고 특히 안정된 직장을 보장했기 때문에 가족이 없는 조건에서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유흥업소 등에서 정착금을 탕진하는 사례가 대표적인 일탈 행위였을 뿐 경제적 어려움,가족구성원간의 갈등 등의 사례는 찾기 어려웠다.하지만 남한사회에 대한 정보 부족과 이질적 체제와 문화적 차이로 사기를 당하거나 심리적 불안을 호소하는 사례는 다수 발생했다.1990년 소련과 동구유럽 사회주의 국가의 붕괴와 몰락은 북한이탈주민 발생과 경로 특성에도 변화를 초래했다.소련 및 동유럽 국가에 나와 있던 북한 유학생과 파견노동자들이 국내입국행렬에 동참하게 된 것이다.북한이탈주민 입국이 연간 30~40명 수준에 이르게 되자 정부는 1993년 법률개정을 통해 이들에 대한 업무를 보건사회부로 이관하게 된다.결국 우리사회에 탈북민은 국가유공자에서 정부의 생계지원을 받는 사회복지대상으로 성격규정이 변화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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